盧후보측'개각 불만'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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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대통령후보의 비서실장인 정동채(鄭東采)의원이 16일 총리서리 제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더구나 鄭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했고, "참모회의를 거쳐 나온 얘기"란 점을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후보의 의견으로 봐도 좋다"는 말도 했다. 후보 진영의 공식의견임을 분명히 하면서 청와대 측과 막후 절충의 여지를 닫아놓은 것이다.

鄭실장의 발언에는 우선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DJ에 대해 鄭실장은 "시비공세를 예견했기 때문에 (후보가)중립내각을 제안했던 것인데 일언지하에 일축된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7·11 개각'에 대한 후보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다.

후보 진영은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제안한 중립내각 구성, 아태재단 및 金대통령 장남 김홍일(金弘一)의원의 거취 문제 등이 개각과 DJ의 기자간담회(15일)에서 철저히 무시당한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해 왔다. 참모들 사이에선 공공연히 "이제 각각 제 갈 길로 가자는 것이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지지도 반등과 재기의 돌파구로 'DJ와의 차별화'를 들고 나온 후보로선 자신의 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정치적 반격과 시위를 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수 있다.

만일 후보가 청와대의 묵살을 순순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후보의 위상과 리더십은 크게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청와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미지 실추를 막고 DJ와의 차별화 의지를 부각하려는 것 같다.

8·8 재·보선 대비책의 성격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6·13 지방선거 때 DJ 아들들의 비리문제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실기(失機)한 것이 결국 참패를 가져왔다는 게 후보 측의 인식이다. 때문에 장상(張裳)총리서리에 대한 검증 논란과 DJ의 정국 상황인식을 둘러싼 시비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슈를 선점해야 선거를 치러나가기가 수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이회창(會昌)후보에 대한 공세의 뜻도 있다. 鄭의원은 "張총리서리에 대해 처음에 괜찮다고 했다가 이제 와 문제삼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는 대선 국면에서 중립성 시비가 제기될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론 '이회창-노무현 대결'구도를 굳히려는 후보 측의 전략과 연결돼 있다.

張총리서리에 대해 "총리로서의 활동을 자제하고 검증절차를 거치는 게 좋다"고 한 대목은 張총리서리에게 인사청문회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주문과 함께 더 이상 논란을 확산시키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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