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은 자유의 線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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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좌파 유령의 뿌리가 그렇게 깊은 것인가. 52년 전 발발했던 6·25와 지난 서해사태는 너무나 흡사했다.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렸던 이 나라는 서해사태에서 똑같은 혼란을 겪었다. 북한과 그 동조자들은 6·25를 놓고 북침설을 주장했다. 남쪽이 먼저 도발을 해 북쪽이 할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하나는 수정주의다. 6·25 때 북쪽이 남침을 한 것은 사실이나 남침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상황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미 남쪽은 좌우의 대립이 극에 달해 내전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됐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도발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려는 진보성향의 인물들이 내세우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은 역사적 사실이며, 특히 위와 같은 주장들은 소련의 붕괴 이후 모스크바의 사료(史料)에 의해 거짓임이 입증됐다.

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가 나왔다.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일부 방송과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우리가 6·25 때 북침을 했을 것이란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묘하게도 이 정권을 지지해온 매체들만이 이런 보도에 앞장섰다. 그 다음 나온 것이 북방한계선(NLL)의 문제점이다. 이 선이 "휴전협정에 따른 것도 아니고 한국과 유엔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문제가 있다" "북한의 코앞에 있는 이 선 때문에 북한이 불편하니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등 마치 이 선에 문제가 있어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처럼 보는 시각이다. 주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펼치는 이런 논리들은 "비록 북쪽이 저지르긴 했어도 북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6·25의 수정주의자들과 똑같은 발상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번 사태는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백번 양보해 이 선을 다시 협상하려면 북한이 먼저 이같은 도발을 중지하고 남북화해에 충실해야 한다.

해군의 작전이 문제가 아니다. 전투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꼭 30년 전 나는 대학졸업 후 해군소위로 '59함'을 타고 바로 백령도 앞 이 수역 바다를 지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선제공격할 권한이 없다. 이승만(承晩)대통령의 북진통일론에 겁먹은 유엔사는 북한과의 충돌을 무조건 피하게 했다(우리 해군은 공격용 무기인 잠수함을 가질 수 없었다가 최근에야 가지게 됐다). 때문에 북한의 선제공격에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늘 취약하다. 따라서 왜 작전을 못했느냐,보복을 못했느냐고 따지면 해군으로선 답답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다음 전투가 발생한다면 이번을 교훈삼아 전술을 개발해 이기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다.

나는 전사한 수병과 장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백령도 앞바다는 파도가 세다. 심청이가 눈먼 아버지를 위해 물에 빠진 인당수가 바로 이곳이다. 당시에는 진해에서 출동해 보통 30일간 바다에 머물렀다. 나중에는 부식이 떨어져 수병들은 고춧가루·미원·소금을 섞어 맨밥에 비벼 먹었다. 지금은 먹는 것은 나아졌겠지만 그런 고생을 하며 우리는 이 선을 지켰다. 왜냐, 우리가 무너지면 백령도·대청도·연평도는 북한에 넘어가며, 그것은 바로 북한 해군이 인천 앞바다까지 진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생을 하던 우리 병사들을 마치 도둑 장례를 치르듯 소리 안나게, 신속하게, 쓸쓸하게 우리는 떠나 보냈다. 왜냐? 이 정부는 알 것이다. 왜 NLL문제, 우리 어선의 월선 얘기가 친정부 매체에서 나오느냐? 이 정부는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 서해교전은 잊혀지고 총리 인준에 온 신문이 매달려 있다. 혼란은 정리가 안된 채 다음 기회의 혼란을 기다리며 묻혀가고 있다.

햇볕정책은 우리 체제를 지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동포로서 불쌍한 북한주민은 도와야 한다. 단 우리의 자유체제를 지키면서 도와야 한다. 그것이 흔들리면 북한이 노리는 인민해방전선이 시작되는 것이다. NLL은 자유체제의 최후의 선이다. 우리는 이 선이 북한 땅까지 그 외연이 넓어지길 바란다. 단,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써 말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백령도·연평도 어민들도 대형(大兄)이 시키는 대로 붉은 꽃을 흔들어야 한다. 그것을 눈뜨고 보는 것이 진보이고 지식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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