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살렸더니 파업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기아자동차의 노사 분규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지난달 24일 이후 사측의 무성의를 이유로 부분파업 등 실력행사에 들어간 기아차 노조는 15일에도 4시간만 일을 하고 사측과의 협상을 결렬시켰다. 조업 단축이 3주 이상 계속되면서 생산 차질 2만7천여대에 피해액은 3천4백억원에 이르고, 가뜩이나 주문이 밀린 국내외의 계약자들은 출고가 늦어져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기아차의 분규 재발을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기아차가 어떤 회사인가.5년 전 강성노조에 부패한 경영진이 뒤얽혀 거덜난 회사를 '국민기업'이라며 대통령후보들까지 나서 살려보려다 결국 부도를 냈다. 그래도 회사를 살리려고 1998년 말 현대자동차에 넘겨주면서 무려 7조1천4백억원의 부채를 탕감해준 회사다. 당시 은행들이 깎아준 부채는 공적자금으로 메워줬고, 2000년부터는 흑자로 돌아섰으니 기아차는 세금으로 되살린 회사나 마찬가지다.

최근 재연된 분규는 노조의 지나친 요구 때문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기본급을 12.5%, 성과급을 두배 올려달라는 요구는 그나마 협상 여지가 있다. 그러나 노조원 전배·공장 이전시 노사 합의를 의무화하거나 징계위원회의 노사 동수 구성 등 단체협상 안건은 사측으로부터 경영권 침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요구는 5년 전 잘 안팔리는 승용차 라인의 근로자를 주문이 밀린 승용차 라인으로 옮기려는 시도를 노사협약 위반이라며 봉쇄했던 어처구니없는 전례를 연상시킨다.

기아차 노조가 아직 법의 테두리 안에서 쟁의를 진행 중인 것은 다행이다. 기아차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을 감안해서라도 노조 측은 과도한 요구나 실력행사를 지양하고, 사측 역시 줄 것과 못줄 것을 분명히 가려 분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기아차 노조가 다시 붉은 띠를 매고 거리로 나설 경우 월드컵으로 세계에 부각된 붉은 물결마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