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까지 결백 주장하던 정인철 청와대서 집중 설득하자 사표 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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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2일 사표를 제출한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은 최근 권력 농단 논란의 중심에 선 ‘선진국민연대’의 대변인 출신이다. 그가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후원금 수억원을 내도록 했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정례모임에서 민원을 했으며 ▶이른바 ‘메리어트호텔 모임’을 통해 공기업 인사에 관여했고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의 KB금융지주 회장 공모를 포기시켰다는 등의 의혹이 있다고 민주당은 주장했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 등을 통해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에서도 “정 비서관의 경우는 11일 사표를 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과 다르다.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에 연루됐다는 정황도 일부 포착됐으나 정 비서관을 둘러싼 의혹은 확인된 게 없다”는 동정론이 제기됐다. 정 비서관도 이날 오후 2시까지 “누구로부터도 사퇴 권고를 받은 적이 없고,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사표를 던진 것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대통령을 위해 퇴진하라”고 집중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퇴진이 자진 사퇴라기보다 “선진국민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더 이상 정권에 짐이 돼선 안 된다”는 정권 핵심부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정 비서관이 사표를 내며 남긴 글에는 억울함이 묻어난다. 그는 “할 말은 많지만 제 가슴에 묻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오늘 이 자리를 물러난다”고 썼다. 또 구설의 중심이 된 선진국민연대 활동에 대해서도 “참 의미 있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권력 암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지목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본지 7월 12일자 1면> 이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처리하면 된다”며 “분열적 행동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가 전달된 뒤 ‘선진국민연대’를 만들었던 박 차장 측의 이영호 비서관이 사표를 냈고, 같은 그룹의 정 비서관도 물러났다.

이제 관심은 박 차장의 거취에 쏠린다. 소장파에선 “몸통이 박 차장이므로 그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박 차장은 12일 밤 통화에서 “나의 자진 사퇴설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기자들에겐 “(나를 사퇴시키려고 여권) 내부에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런 그를 보는 청와대의 시각도 관계자들에 따라 다르다.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란 관측과 “물러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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