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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사회를 묶는 ‘기념일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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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전국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우리나라 51개 법정기념일 중 하나다. 법정기념일에는 그날의 뜻을 기리는 것 외에 국가와 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모색하는 기능이 있다. 사회 통합의 기능도 있다.

6·25사변일도 법정기념일이다.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나 6·25사변일이나 같은 법정기념일이지만 좌파와 우파가 이 두 기념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부에선 아직도 한국전쟁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믿고 있다. 학계의 성과가 무시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내 갈등을 정부의 ‘기념일 정책’ 차원에서 풀어볼 길은 없을까. 공휴일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기념일을 사회 발전의 수단으로 삼을 길은 없을까.

왜 기념일에 주목해야 하는가. 기념일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밸런타인 데이, 삼겹살 데이, 자장면 데이, 빼빼로 데이 등 민간에서 시작된 각종 ‘데이’조차 상업주의가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쇠는(?) 명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기념일을 현재 규율하고 있는 것은 98년 7월 25일 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다.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념일에 대해서는 예산 낭비, 인원 동원, 유사행사 중복 등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상공의 날’ ‘보건의 날’ ‘장애인의 날’ ‘과학의 날’ ‘발명의 날’ ‘환경의 날’ 등 법정 기념일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 다 국가 경쟁력 확보, 사회 발전·통합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날들이다. 국경일(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은 역사적으로 뜻깊은 날을 기리며 국가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날이다.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이에 비해 기념일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강하다.

우리나라에는 공휴일에 관한 법이 없다. 공휴일을 규율하는 것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9674호)’이다. 최근 ‘대체 공휴일 제도 도입’을 중심으로 공휴일 관련 법안을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좌절된 바 있다. 천안함 피격은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사건이다. 국경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뿐만 아니라 국경일·기념일·공휴일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법적·제도적 시스템 마련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런 시스템을 마련할 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국제경축일(international observance)·국제기념일(international anniversary) 등으로 불리는 국제사회의 기념일에 어떻게 체계적으로 참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가 챙겨야 할 국제기념일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의료·환경 관련 국제기념일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기념일 외교’는 우방과 친선을 다지고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연극 ‘짬뽕’은 2004년 거창국제연극제와 2009년 한일공연교류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국제기념일 외교의 사례로 지목할 수 있다. 기념일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짬뽕’ 같은 사례가 51개 기념일 모두에서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의 정책적 도움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