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아베 신조(安倍晋三·재임기간 366일)·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365일)·아소 다로(麻生太郎·358일)·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260일), 그리고 간까지 모두 5명의 총리가 정권을 잡았다. 총리가 자주 바뀌다 보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일본 총리 이름을 헷갈리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탄생한 하토야마 내각 역시 8개월 만에 총리가 물러났다. 간 내각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하지만 이번 선거 참패로 사임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재정 건전화, 경제 재건, 사회복지 확충 등 기존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간 총리의 주장은 단명으로 물러난 전직 총리들의 발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닮았다. 무엇보다 9월 민주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당내 최대 세력을 이끄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이 그를 압박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중의원 다수당 대표가 총리를 맡기 때문에 민주당 대표가 바뀌면 총리도 교체된다.
잦은 총리 교체로 상징되는 일본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정책을 비롯한 주요 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정치불안이 국민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소 전 총리는 “사상 초유의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로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기대책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오랜 경기침체를 단명 총리 양산의 원인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1년 채우기도 허덕대는 단명 총리가 이어지는 지금에 와서는 “단명 총리가 일본 경제침체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총리가 사임해 버리면 그 정권에서 추진돼 온 정책들은 모두 ‘실패작’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새 총리가 전임자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충분히 의미 있는 정책들마저 포기하기 때문이다. 경제·복지 등 주요 분야의 정책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났다 사라지기 일쑤다. 결국 잦은 리더 교체는 정치안정과 정책 일관성을 해쳐 국가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권철현 주일 대사는 얼마 전 특파원 간담회에서 “리더십의 위기가 정치위기를 자초하고, 정치위기는 곧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제위기가 국민의 비난과 위기로 이어지는 ‘불량한 사이클의 메커니즘’”이라고 일본 정치를 분석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고 필요한 정책을 끈기 있게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 일본의 잇따른 단명 정권이 남겨준 가장 큰 교훈이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