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계획 나열 말고 불확실성부터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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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 5%를 목표로 한 경제운용 및 투자계획을 내놨다. 재정 지출을 상반기 중에 앞당겨 집행하고 하반기에는 연기금과 민간자본을 각종 공공시설투자에 끌어들이겠다는 게 골자다. 작금의 경기부진 양상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내년에 4% 성장도 어렵다고 보고, 재정과 민자를 총동원해 경기의 불씨를 지펴보겠다는 각오다. 내년에는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짐과도 맥을 같이한다.

우리는 정부가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의 초점을 경기회복에 맞췄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정부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

우선 우리 경제가 왜 이렇듯 심각한 부진에 빠졌는지에 대한 진단이 확실치 않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것 아닌가.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지만 이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왜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지를 제대로 살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온다.

진단이 부실하다 보니 처방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부진한 것이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면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살릴 방도를 찾는 게 순서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은 민간의 수요가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정부가 직접 내수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SOC)과 복지시설 투자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도 본질적으로는 재정을 통한 정부 투자와 다를 게 없다.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내수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기회복의 첫걸음도 경제의 불확실성을 없애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그동안 경제주체들 사이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킨 데는 정부 정책의 혼선과 상충이 큰 몫을 했다. '경제를 살리자'면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를 밀어붙이고, '건설경기의 급락이 문제'라면서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 왔다. 이런 정책혼선과 상충만 해소해도 경제의 불확실성은 상당히 덜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