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형 김흔에게 화살을 겨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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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흔의 질문은 『시경』에 나오는 '벌판의 송장이 되어도 형제는 서로 찾아다니네(原?屍矣 兄弟求矣)'의 문장을 빌려온 것이다.

"태흔 형님과 약속하였던 대로 아우인 제가 형님의 송장을 이처럼 찾아왔나이다."

껄껄 웃으며 김양이 말하자 김흔이 침묵 끝에 말을 받았다.

"송장이 되지 못하고 산송장으로 산 채로 잡혔으니, 내가 어찌 패한 장수로서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태흔 형에게 내가 한 가지 묻겠소이다. 여전히 황하는 곡절이 많이, 굽이굽이 흘러가도 반드시 동쪽으로만 흘러가나이까."

참으로 짓궂은 질문이었다.전쟁 전에 김양이 격서에 실어 보냈던 '한 삼태기의 흙으로는 황하의 물을 막을 수 없다'는 전언에 답신으로 보내왔던 김흔의 격문 '만절필동(萬折必東)'에 대한 질문을 새삼스럽게 던져 보인 것이었다.그러자 김흔이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망국의 신하는 감히 정사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고, 패군의 장수는 감히 용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이다. 이제 나는 망국의 신하에다 패군의 장수가 되었는데,어찌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겠소이까."

김흔의 말은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오는 범어의 말. '亡國之臣 不敢語政 敗軍之將 不敢語勇'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김양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소이다, 태흔형. 옛 위나라의 현인 백리해(百里奚)는 위나라에 있을 때에는 나라가 망했으나 진나라로 갔을 때에는 진나라의 패자가 되었다고 들었소이다. 그것은 백리해의 능력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위나라가 그를 푸대접하였을 뿐 아니라 정도를 걷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소이다. 이제 썩은 조정은 망하고 옛것은 제거하고 새것을 펴고 원수를 갚고 수치를 씻을 새 세상이 열리게 되었으니,이는 백리해가 진나라에 가서 뜻을 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하오니 형님, 우리 형제 힘을 합쳐 나아갑시다."

김양의 말에 김흔이 소리쳐 말하였다.

"어찌하여 위흔이 자네는 이미 죽은 죄인의 관을 쪼개어 시신의 목을 베려 하는가."

부관참시(剖官斬屍).

큰 죄를 지은 죄인에게 사후에 내리는 형벌. 이미 죽어 관 속에 들어있는 시신의 목을 베어내는 극형. 김흔은 설득하는 김양의 말에 단호하게 답변함으로써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그대가 나의 형제라면 나를 명예롭게 죽이는 것이 진정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소이다."

김흔의 말에 김양은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이미 죽어 관 속에 묻힌 송장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시면서 어찌하여 또다시 죽기를 바라십니까."

김양은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 활을 가져오너라."

그러자 정년이 김양이 쓰는 각궁과 전통을 가져왔다. 김양은 전통에서 화살을 한대 뽑아들었다. 김양의 활솜씨는 신출귀몰하여서 쏘면 쏘는 것마다 백발백중이었다.반드시 생포하라는 지상명령으로 간신히 살린 종부형 김흔을 화살을 쏘아 죽이는가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옛날 위나라의 유공지사(庾公之斯)는 명궁이었으나 자신의 스승을 죽일 때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차마 선생님이 가르친 궁도를 가지고 도저히 선생님을 해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국군(國君)의 공사(公事)인 만큼 제가 감히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차마 태흔 형님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사사로운 형제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공적인 일인 만큼 저도 감히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김양은 화살을 들어 활의 절피 부분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껏 활시위를 잡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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