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닫히는 對北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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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해교전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은 마당에 북·미 대화마저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남북, 북·미 양국이 대화 재개의 접점을 찾기도 어렵다.

우리 국민의 싸늘해진 대북 여론은 남북대화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북·미관계는 양측 내부의 매파가 맞부닥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북·일관계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양측은 적십자 회담을 걸어놓고 있지만 일본은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의 국적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괴선박이 북한 것으로 밝혀지면 일본의 보수파는 대북 제재를 들고 나올 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의 방북 때 북한이 밝힌 '남방외교' 방침 가운데 남북대화는 단절됐고 북·미대화는 성사 직전 무산됐으며 북·일대화의 끈도 끊길 판이다.

한반도 정세가 그만큼 취약해진 것이다. 여기에 남북은 숱한 회담을 하면서도 위기관리에 필요한 핫라인조차 구축하지 못했으며, 북·미간 뉴욕 채널은 열려 있지만 실질적 협의가 어려운 연락창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한반도 정세가 곧바로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문제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지난 3월의 한·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을 보는 한·미간의 시각차는 있을 수 있지만 한·미 정상간 북한문제 해법의 틀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북한도 추가도발을 자제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북한은 민간 채널을 통해 유화 제스처를 쏟아내고 있다.

북·미 양측은 한국의 현 정부가 임기 말이라는 점도 저울질할 것이다. 현재로선 서로 한계선(Red Line)을 넘지 않고 한국에 차기 정권이 들어선 다음 대립이나 타협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수도 여럿이다. 첫째는 북한의 서해상에서의 도발 의도다. 이것이 북한 지도부의 승인 아래 이뤄진 것으로 판명나면 상황은 더 꼬인다.

북한 정권에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는 미국 매파들은 다시 채찍을 들지도 모른다. 미국 의회 보수파나 정부 내 비확산 전문가들은 탈북자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등 북한에 대해 이미 다면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둘째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다. 미국은 경수로 건설 진척에 따라 지금부터 북한의 핵사찰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핵사찰을 밀어붙이면 정세는 난기류에 빠질 수도 있다. 북한은 한·미·일 남방 3국과의 냉기류에 대비해 전통적 우방인 중·러와의 북방 3각연대를 강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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