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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도와주십시오.국민여러분>20회 빅딜中 :정부 빅딜 압박에 재계 "이 참에 부실 털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998년 7월 26일.

한적했던 일요일 오후 3시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8층에는 갑작스레 국내외 취재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빅딜과 관련, 정·재계가 극비리에 추진한 첫 간담회 장소가 이곳이란 사실이 새 나간 탓이었다.

이날 간담회는 DJ와 5대 그룹 총수가 20여일 전인 7월 4일 빅딜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며 정·재계가 정기적으로 만나 이를 협의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었다.

첫 만남이었던 만큼 정·재계의 '샅바 싸움'은 치열했다. 오후 4시30분쯤 시작된 회의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회의 내용에는 철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본지 특별취재팀이 처음 입수한 당시의 녹취록에 따라 재구성한 대화 내용은 이렇다.

김우중 전경련 회장:중복·과잉 투자는 정부가 과거에 허가를 남발한 데서 비롯됐다. 구조조정을 빨리 하자면 은행 빚을 출자로 전환시켜 준다는 등의 지원책을 먼저 내 놓아야 한다.

강봉균 경제수석:5대 그룹이 빅딜도 하고 부채비율도 낮춰 중복·과잉 투자를 해소하는 데 앞장서 달라. 그렇게만 하면 무대 위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래도 추겠다. 은행 빚을 출자로 전환시켜 주고, 빚을 갚기 위해 파는 부동산을 토지공사가 사 주게 할 수도 있다.

김우중:부채비율도 무조건 2백% 이하로 낮추라고만 할 게 아니라 자산재평가를 인정해 달라. 부동산은 장부가격보다 시가가 훨씬 비싸다. 이를 시가대로 평가해 회계장부를 다시 작성하면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진다.

이헌재 금감위원장:자산재평가는 장부상 숫자만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 실제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안된다. 더 근본적인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빚을 줄이기 위해 LG의 대표 상품인 치약 등 생활용품 부문도 팔려고 내 놓았지만 안 팔리는데 어떻게 하나.

이건희 삼성 회장:삼성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국책사업 성격의 삼성항공을 정부가 가져가 달라고 수차례 건의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계가 모여 조정안을 만들려고 해도 잘 안되니 정부가 중재해 달라.

김우중:요즘 대기업엔 금감위·공정위·감사원·국세청 등의 조사가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시간을 좀 달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대기업이 그동안 고쳤어야 할 일을 미뤄 왔기 때문에 자초한 일이다.

손길승 SK그룹 회장:노조의 반발이나 시장의 반응 등 '5대 그룹'이기 때문에 계열사를 마음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같은 정·재계의 시각차는 두달 뒤인 9월 3일 전경련이 7개 업종의 빅딜 방안을 발표하자 양측의 힘겨루기로 발전한다.

재계의 빅딜 조정역을 맡았던 전경련은 온갖 고생 끝에 7개 업종에서 빅딜 합의안을 이끌어낸 만큼 정치권·정부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재벌그룹들의 1차 빅딜은 지분 나눠 먹기에 불과하다. 대통령도 전혀 만족하지 않고 있다."(9월 9일 자민련 세미나에서 박태준 자민련 총재)

"선박용 엔진과 정유를 뺀 5개 업종은 어느 그룹도 책임을 안 지려고 해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게 돼 있다. 자구계획도 부실하다. 이런 곳에 지원해 줄 수는 없다."(9월 9일 제3차 정·재계 간담회에서 이규성 재경부 장관)

재계가 내놓은 그림이 박태준(TJ) 자민련 총재나 정부가 구상했던 빅딜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TJ가 의도했던 빅딜은 한마디로 '1등 기업에 힘 모아 주기'였다. 현대는 자동차, 삼성은 반도체, LG는 석유화학에 힘을 실어 주자는 '삼각 빅딜'이 그랬다. 중복·과잉 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빅딜을 추진한 정부는 업종마다 경영주체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당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재계의 계산은 달랐다. 장차 그룹에서 떼 내려고 했던 적자사업을 정리할 기회로 빅딜을 활용하려 했다.

석유화학만 해도 1등인 LG는 빠지고 2,3등인 삼성과 현대가 같은 지분으로 별도회사를 설립해 그룹에서 분리하기로 했다. 항공기·철도차량·발전설비도 각 그룹이 만성 적자였던 이들 사업을 그룹에서 떼 내 별도회사로 합치고 지분을 나눠 갖는 식이었다.

선박용 엔진과 정유는 각각 삼성과 한화가 한국중공업과 현대에 해당 사업을 넘기는 것이었지만, 역시 '경쟁력 높이기'보다 적자사업 정리의 성격이 강했다. 그나마 빅딜이라는 말에 가까운 업종은 반도체 정도였다.전경련이 빅딜을 두고 빅딜이나 사업 맞교환이라는 말 대신 굳이 사업 구조조정이라는 용어를 쓴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이규성의 회고.

"재계의 방안은 그룹 간에 사업을 주고받아 핵심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보다 적자사업을 털어 내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이러다 보니 통합 회사를 누가 경영할지,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꾸려갈지 등의 계획도 미흡했다."

정부의 압박에 전경련은 백방으로 뛰며 재계를 다시 설득했지만 그룹 간 이해관계의 조정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전경련이 10월 7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다시 내놓았으나 9월 3일 발표 내용보다 진전된 게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단일 회사로 합치기로 했던 철도차량은 현대의 반발 때문에 이원화로 후퇴했고, 발전설비 경영주체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반도체는 전문 평가기관에 맡겨 경영주체를 정한 뒤 지분을 7대3으로 나누기로 합의했지만 평가기관 선정에서부터 막혔다. 석유화학·항공기는 그룹 간 이견으로 지분은 똑같이 나누되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선에서 겨우 절충했다.

시간만 가자 DJ는 조바심을 냈다.

그해 11월 17일 아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를 방문 중이던 DJ는 회담장에 가는 길에 강봉균 경제수석을 대통령 전용차에 일부러 동승시킨다.

"강수석,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이 미진해 큰일이오. 세계가 지켜보고 있지 않소."

"다음달부터는 아예 대통령님 앞에서 5대 재벌이 구조조정 실적을 분기마다 점검받도록 할 예정입니다. 곧 구체적인 성과가 나올 겁니다."

11월 24일 금융인 1백30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DJ는 재계를 본격 압박한다.

"5대 재벌이 자기들 이익만 생각하면 우리 경제는 무너진다. 금융기관이 독한 마음 먹고 5대 재벌 개혁을 연말까지 책임지고 해달라. 정부는 정말로 단호한 결심으로 개혁을 늦추거나 봐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청와대의 분위기는 채권단에도 투영된다.

이미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채권단이 재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업구조조정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놓은 참이었다. 정부·재벌의 눈치 보기에 익숙한 은행에 '재벌 다루기'를 맡겨 놓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헌재는 사업구조조정위원장으로 오호근 당시 기업구조조정위원장(현 라자드아시아 회장)을 낙점했다. 오호근은 '자유인'을 자부하며 어떤 재벌과도 인연을 맺지 않은 인물이었던 데다 DJ의 '정치적 사부(師父)'격인 거물 정치인 고 오위영씨의 장남이었다.

DJ가 채권단을 채근한 그날 전경련이 정유·항공기·철도차량·석유화학 등 4개 업종의 구조조정 계획서를 사업구조조정위에 제출하자 오호근은 7개 관련 은행 임원을 소집한다.

"어떻게들 평가하십니까?"

임원들의 반응은 거의 이구동성(異口同聲)이었다.

"은행 돈으로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라는 식입니다. 말도 안됩니다. 그러나 정부와 재계의 합의이니 도와줘야지 어쩌겠습니까."

오호근이 딱 잘라 말했다.

"채권단은 사업성만 따지면 됩니다.아무 말 말고 제게 맡겨 주세요."

사흘 후 사업구조조정위는 전경련이 낸 4개 업종 계획서 가운데 정유를 빼고는 모두 '퇴짜'를 놓았다. 석유화학은 "사업성이 전혀 없다"며 아예 평가도 안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이 곧바로 오호근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빅딜만 하면 정부나 은행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승인을 안 해주면 어떻게 합니까."

"채권단 입장에선 가망없는 사업에 돈을 대 줄 수 없습니다."

"4개 사업은 적자가 뻔한데 과거 정권이 5대 그룹에 떠넘겨 억지로 맡은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손실을 충분히 부담했으니 정부나 채권단도 도와줘야 합니다."

"정책적 고려는 나중에 정부하고 협의하십시오."

오호근의 회고.

"3개 업종에 승인 불가 판정을 내리자 한 은행 임원은 '30년 은행원 생활에 정부·재벌이 하는 일에 퇴짜를 놓긴 처음이다. 10년 체증이 다 풀렸다'고 했다. 정부든 재벌이든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원칙을 세워야 했다."

정부·채권단의 전방위 압박에 몰린 5대 그룹은 결국 한걸음 물러선다.

12월 7일.

DJ 주재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5대 그룹은 정부의 주문대로 '화끈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다. 그룹별 주력업종을 각각 3~5개로 줄이기 위해 모두 2백60여개인 계열사를 1백30여개로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7개 업종 빅딜도 이때 처음으로 명문화한 것은 물론 분기에 한번씩 대통령 앞에서 실적을 점검받기로 했다. 이로써 빅딜은 '당사자간 거래'가 아니라 재계가 정부·국민에게 약속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매듭지은 빅딜은 이후에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크게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1등 기업에 힘 모아 주기'나 '중복·과잉 투자 해소'라는 빅딜 논리도 구두선이 되고 말았다.

<표 참조>

또 DJ가 표방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와 배치된다는 논란을 두고 두고 일으키고 있다.

빅딜로 탄생한 기업의 경영성과도 신통치 않았다.

항공기(현 한국항공우주산업)·철도차량(현 로템)·선박용엔진(현 HSD) 통합회사는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올 들어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를 인수한 현대정유, 현대·삼성의 발전설비를 인수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도 흑자 경영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는 반도체 경기 침체로 10조원의 빚을 안은 채 침몰,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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