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기업도 나라도 '히딩크 경영학'익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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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 등장했던 이 구호를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까. 신뢰받는 지도자의 부재라는 우리 현실이 '그라운드의 명장(名將)'에게서 대리만족을 구하는 것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축구 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은 이미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신간 『CEO 히딩크』는 바로 그를 "한국 축구에 테크닉을 가르쳐준 기술자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개혁한 경영자"로 보고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모델로 삼은 책이다.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등 기업 CEO들의 자전적 경영서나 평전 스타일의 연구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렇게 한 인물, 그것도 스포츠 지도자의 리더십 원칙에 초점을 맞춰 기업경영과 비교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처음이다.'히딩크호 침몰 위기'라는 비판 여론이 팽배하던 올 초 기획됐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한 분석도 미덕이다.

공저자는 축구 매니어인 소장 경영학자 이동현(가톨릭대)교수와 경영학도 출신의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김화성씨. 히딩크의 축구철학을 이들은 '지배(domination)와 압박(press)'으로 요약한다. 90분 내내 경기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상대보다 선점하고 지배하는 방법을 연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게임의 지배'는 축구 뿐아니라 경영에서도 필요한 것으로, 선진 기업이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게임의 룰에 상대편을 끌어들여 게임을 지배할 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책은 '전략''변화''조직'을 키워드 삼아 모두 3부 15장으로 구성돼 있다. 장마다 먼저 히딩크의 말을 인용, 핵심적인 성공 요인들을 짚어보고 그가 추진한 한국 축구의 개혁 과정을 정리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분석, 구체적인 실행 지침을 제시하는 식이다. 몇몇 대목에서는 히딩크식 원칙을 기업경영에 지나치게 확대 해석·적용한 느낌도 들지만 전반적으로 유기적인 짜임새를 보인다.

저자들은 적절히 역할을 분담, 히딩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궁금해하는 일반 독자들은 물론 리더십 연구자들의 요구를 두루 만족시킬 수 있도록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여기에 GE·소니·월마트 등 외국 기업들 뿐 아니라 삼성·LG·대우·한국전기초자 등 국내 기업들을 망라한 50여개의 케이스 스터디가 이해를 돕는다.

이를테면 8장 '이름 대신 실력'이라는 히딩크의 선수 선발 및 기용원칙을 능력 위주의 인재경영과 접목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홍명보의 기용을 들고 있다. 홍명보는 백전노장으로 경험과 노련미는 있지만 체력과 스피드를 강조하는 히딩크의 눈에는 선뜻 대표로 뽑기 어려웠다는 것. 올 2월만 해도 히딩크는 박항서 코치를 통해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줄 구심점으로서 대표팀에 합류시킬 수는 있지만 경기에는 출전시키지 않을지 모른다"는 요지의 말을 그에게 전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모로코와의 평가전 등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히딩크를 만족시켰고, 마침내 월드컵에서 큰 몫을 해냈다.

선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 원칙을 고수하는 이런 인재 경영은 GE에서도 볼 수 있다. '명장' 잭 웰치는 임원들을 A·B·C급으로 평가하게 하고, 하위 10%에 속한 이들은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다소 몰인정한 차별화 전략을 인사 원칙으로 삼았다. 온갖 비판 속에서도 10년 이상 그런 전략을 지속한 끝에 그는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인재개발 회사'라는 비전을 실현했다.

책 끝머리에 30여쪽에 걸쳐 히딩크의 '예술 같은' 말들을 정리해놓은 어록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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