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협상 여기서 끝낼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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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 4인 대표회담이 소득 없이 막을 내릴 위기다. 여야는 협상 결렬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각자의 길을 갈 명분 축적에 나섰다. 꽉 막힌 정국에 뭔가 돌파구가 마련되리라 기대했던 국민들로선 실망이 크다.

열린우리당은 어제 4인회담의 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국회법 절차에 따라 4대 입법 등 모든 의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더 이상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 타협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김원기 국회의장에게 국가보안법의 본회의 직권 상정을 요구했다.

한나라당도 강경하다. 박근혜 대표는 "4대 법안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가치인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것이고 나중에 엄청나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면서 "거기에 동의한다면 한나라당도 역사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든 야든 협상을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 이쯤에서 그만둘 거라면 애당초 4인회담을 열 필요조차 없었다. 여야 지도부는 4인회담을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한 채 제 갈 길을 가기 위한 명분 축적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특히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경우만 봐도 상당 부분 의견이 접근하고 찬양.고무죄에 대한 절충으로 압축된 상황이다. 그동안의 협상 노력을 허사로 돌리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특히 여당 지도부는 지금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농성을 하는 강경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지도부가 이들에게 끌려 거의 합의점에 이른 사안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지도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라 장래를 위해 큰 정치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내 강경파가 반대한다고 끌려다니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여야 대화는 불가능하다. 야당도 다른 의사일정의 진행에는 협조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동의안이나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민생법안은 이번 회기 중에 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어렵게 여기는 정치인의 기본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