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탐욕 더 이상 못보겠다" 세계 투자기관 제동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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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세계의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경영자들의 탐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실적에 관계없이 엄청난 스톡옵션이나 보너스를 받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에너지 거래기업 엔론의 파산을 계기로 느슨해진 CEO들의 윤리의식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 국제기업지배구조네트워크(ICGN)가 전세계 경영진들의 연봉과 관련한 표준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가 모임인 이 단체는 회원사들의 자산운용 규모(10조달러)를 바탕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ICGN은 다음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이 안을 상정해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이미 세계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과 세계적 자산운용회사인 피델리티·캐피탈그룹·바클레이스, 그리고 영국보험협회와 미국기관투자가위원회 등이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어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ICGN은 기관투자가들의 막강한 의결권을 활용해 기업들이 이 표준안을 받아들이도록 할 방침이다.

표준안의 주요 내용은 ▶경영진들에게 주는 스톡옵션과 각종 혜택을 비용으로 계산하고▶기업 규모를 근거로 인수·합병(M&A)의 성공 보너스를 주는 것을 금지하며▶스톡옵션은 한꺼번에 대규모로 주기보다는 정기적으로 조금씩 준다는 것 등이다.

이 밖에 ▶경영진들의 연봉 상·하한선을 공시하고▶경영진들의 보수를 결정할 독립위원회를 둔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영국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보다폰은 이같은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에 맞춰 경영진들의 연봉을 기관투자가들과 협의해 정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보다폰의 크리스토퍼 겐트 CEO는 독일 만네스만 인수를 마무리짓고 2백20만달러를 보너스로 받아 주주들의 비난을 받아왔다.

경영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은 지난해 주가 급락에도 불구하고 스톡옵션을 포함해 7억6백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등 상당수 CEO들이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EO들은 퇴직 후에도 거액 연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지난해 GE를 떠난 뒤에도 매년 9백만달러의 연봉을 받기로 했으며, GE에 자문을 해주는 대가로 하루 1만7천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월드컴 CEO였던 버나드 에버스는 지난 4월 경영위기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5백만달러의 연봉과 평생 의료비 지원을 약속받았다.

IBM CEO였다 회장이 된 루 거스너는 오는 2012년까지 사무실·승용차·클럽 멤버십 등의 비용을 지원받고 있다.

한편 지나치게 많은 퇴직금을 받아 논란을 빚은 스웨덴·스위스 합작기업 ABB의 두 전직 최고경영자(CEO)는 8천1백50만달러를 토해내기도 했다.

ABB 전직 CEO인 퍼시 바네빅과 후임자 요란 린달은 1996년과 2000년 말 퇴사하면서 각각 8천8백만달러와 5천만달러를 퇴직금과 보너스 명목으로 챙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ABB 이사회로부터 퇴직금을 반환하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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