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문광위장 배분 막판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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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물 국회'가 한달 만에 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국회의장 자유투표 제의를 사실상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양당은 24일 원 구성 대책을 위한 최고위원회의·원내 대책회의·의원총회·총무회담을 잇따라 여는 등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실상 첫 의장 자유투표=한나라당 이규택(揆澤)·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는 이날 회담에서 "의장을 자유투표로 선출한다"는 데 의견을 접근했다.

의원들은 이른바 '당론후보'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 의장감이라고 생각하는 의원을 무기명 비밀투표 형식으로 적어넣는다. 생각나는대로 적기 때문에 여러 번 표결해야 할 수도 있는 소위 '교황식' 선출방식이다. 각 당이 의장후보를 내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정당별 표대결과는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이날 의총에서 박관용(朴寬用)의원을 의장후보로 선출했던 당론을 철회했다.

물론 과거 의장선거 때도 의원들의 무기명 투표는 보장됐지만, 의원들은 당에서 정한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에 앞서 당론 후보를 정하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고 경선을 하기도 했다. 여당의 경우 소속의원들이 누구를 찍었는지 '표검사'에 나선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개정된 국회법에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했다.

현 추세라면 한나라당의 당론철회에도 불구하고 박관용 의원이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고,한나라당 의원들이 朴의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장 선출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과거와 차이가 있고, 보다 민주적으로 개선된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자유투표가 이뤄질 경우 3공(共) 이후 정착된 '당론투표'가 처음으로 사라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자"=민주당은 한화갑(韓和甲)대표, 정균환(鄭均桓)원내총무 등이 참석한 원내 대책회의에서 의장 자유투표 방안을 수용했다.

회의에 참석한 김태홍(金泰弘)의원은 "월드컵이 끝나기 전에 원 구성을 하지 못하면 엄청난 비난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는 데 참석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전격적인 방향선회는 전날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결정됐다. 최고위원 대다수는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을 딛고 새 출발하려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자"고 주장했다. 여론 부담도 큰 문제지만 시간을 자꾸 끌어봐야 상임위원장 배분에서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 이회창(會昌)대통령후보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열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국회 정상화가 늦어지면 제1당인 우리가 따가운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날 총무회담에서는 부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양당의 주장이 엇갈렸다.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운영·행자·문광·예결위원장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운영·문광위는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회운영을 좌우하는 운영위와 대선을 앞두고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광위에 대해 양당이 모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부의장 1명을 누가 차지하느냐도 문제다.

원 구성이 이뤄져도 국회의 조기가동은 어려울 것이란 견해도 있다. 8·8 재·보선이 임박해 국회가 개점휴업이 될 가능성이 크고, 각종 비리 청문회 개최 등에 대해서는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최상연·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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