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리말 바루기 125. 이따가/있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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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거리에 캐럴도 울리지 않는 썰렁한 성탄절도 지나고 올해도 종착점을 향해 총총히 달려가고 있다. 예년에 비해 활기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참석해야 할 송년회 자리가 적지 않다. 몇 차례 시달리고 나면 술자리 약속을 일깨우는 친구의 "이따가 보자"란 전화가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따가'라는 단어는 '있다가'와 혼동하기 쉽다. '이따가'는 '조금 지난 뒤에'라는 뜻의 부사다. 반면 '있다가'는 '있다'의 '있-'에 연결하는 데 쓰이는 연결어미 '-다가'가 붙어서 된 말로 '머무르다가, 존재하다가,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등의 뜻을 지닌다.

'이따가'는 단순히 뒤에 오는 동사를 꾸미는 역할을 하지만 '있다가'는 서술의 의미가 있다. 문맥을 살펴보아 단순히 '조금 지난 후에'라는 뜻이면 '이따가'를 쓰고, '있다'의 뜻이 살아 있는 경우면 '있다가'를 쓰면 된다.

예를 살펴 보자.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따가 단둘이 있을 때 얘기하자." "이따가 공원에 산책하러 갈까?" 이때는 '있다'의 뜻과는 상관없이 '조금 지난 뒤에' 단둘이 얘기하자거나 공원에 산책하러 가자는 것이므로 '이따가'로 쓰는 게 적절하다. '이따가'는 '이따'로 줄여 쓸 수도 있다.

"가지 말고 여기에 있다가 단둘이 이야기하자" "술래는 눈 감고 1분 있다가 숨은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의 경우는'(여기에) 있다/ (눈 감고) 있다'라는 서술의 의미가 있으므로 '있다가'를 써야 한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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