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훼손한 韓·中 합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베이징(北京)의 한국 공관에 있던 23명의 탈북자와 캐나다 대사관에 들어와 있던 2명, 그리고 지난 13일 중국 공안이 강제로 연행했던 원모씨 등이 오늘 한국에 온다.

우리는 이들의 한국행 희망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중국이 이들을 인도주의적 방법으로 출국시킨 점에 대해 환영한다. 또 중국이 공동발표문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국제법과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천명한 것도 그동안의 북한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더 이상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지 않겠다는 진일보된 원칙을 밝힌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탈북자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는 한국과 중국·북한만이 아니라 미국·일본 등 주변국과 유엔 등 국제기구가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주변국 모두가 얽힌 국제 이슈다. 한국과 중국은 차제에 이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과 국제기구 모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탈북자 해결에 관한 기준을 만드는 데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발표문에는 우리 공관에 중국 측 공안 요원들이 무단으로 난입해 탈북자를 강제로 탈취하고,이에 항의하는 우리 외교관과 언론인을 무차별 폭행한 데 대해 중국의 공식 사과가 없다.

우리 외교 당국은 이를 '상호 유감'이라는 문구로 타협했으나 이는 한국민의 자존심과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주재국의 불법적 행위에 대한 항의와 그들의 외교만행적 행패를 어떻게 상호 유감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합의는 원칙을 포기한 저자세 외교의 전형으로, 국민의 엄정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외교 공관이 탈북자의 탈출행로가 돼서는 안된다"는 중국 측 입장에 한국 정부가 "이해와 공감을 표명한다"는 내용도 지나치게 중국에 양보한 것이다.이번 협상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중국의 사과도 받지 못한 실패 외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