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새 경제교과서, 사교육 부추겨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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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그 사이 제법 인기 있는 경시대회로 자리 잡았다. 1회 때 3587명이었던 지원자는 올해 1만1546명으로 불었다. 명문대 입학용 ‘스펙’으로 분류되며 우등생의 수집품으로 떠오른 덕이다. 문제는 바로 그 문제였다. 문제지를 10년 넘게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경제학 박사에게 e-메일로 보내 봤다. 돌아온 첫마디는 이랬다.

“이걸 고등학교 학생이 푼단 말야? 나도 한참 생각해야 하는 문제가 많은데….”

대학교재인 『경제학원론』 정도는 독파하고, 국내외 경제 현안까지 꿰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란다. 수상자들은 대회에 앞서 『맨큐의 경제학』 등을 학원에서 배웠다. 대학에 들어가 배워도 될 것을 고등학교에서 선행학습한 셈이다.<본지 3월 23일자 e6면>

경시대회 얘기를 꺼낸 건 정부가 7일 발표한 ‘경제교육 활성화 추진방안’이 또 다른 사교육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해서다. 정부는 학교의 경제 수업 시간을 늘리고 경제 교과서를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제를 잘 모르는 교사를 재교육하고, 일반인도 경제를 배울 마당을 늘리겠다고 했다. 모두 시장경제 중심이고 현장체험 위주라 했다.

다 좋은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의 교육 풍토에서 학습량을 늘리거나 난이도를 높이면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과학을 이론과 암기 위주로 공부한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잃듯 말이다. 교과서에서 실험을 강조하면 학생들은 실험과정까지 암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새로 나온다는 교과서가 학생들을 예비 경제학 전공자 다루듯 한다면 그건 학생들을 학교가 아니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이다. 쉬운 걸 어렵게, 어려운 건 더 어렵게 설명해 배움의 장벽만 쌓는 기존 사회·경제 교과서 스타일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런 스타일은 가만히 놔둔 채 몇몇 지식 더미만 더 쌓은 교과서야말로 사교육 업자가 가장 바라는 바다. 그럴 거라면 학생들에게 신문 경제면을 읽으라는 게 백번 낫다.

허귀식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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