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수' 中企는 헛발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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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대기업과 달리 대다수 중소업체에 월드컵 특수는 남의 얘기 같다.

많은 대기업이 왁자지껄한 월드컵 마케팅으로 한껏 재미를 보고 있지만 중소업계는 의류·기념품 같은 일부 생활용품을 빼면 판매 증대가 기대수준을 밑돌고 있다.

◇옷만 잘 팔려=한국 대표팀의 선전으로 월드컵 응원 열기가 폭발하자 붉은 색 티셔츠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한·일 월드컵 공식 휘장사업권자인 ㈜코오롱TNS월드의 경우 크게 재미를 봤다. 이 회사의 서울지역 총판업체인 GMB월드측은 "붉은색 셔츠가 날개돋친 듯 팔려 티셔츠 종류만 50만장 나갔다"고 밝혔다.

응원용 타올·열쇠고리·선수인형 등도 잘 팔린 품목이다.

한국팀 응원단 '붉은 악마'의 티셔츠 '비더레즈(Be the Reds)'를 포함해 붉은색 계통의 티셔츠 판매량이 전국적으로 5백만장을 넘었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했다. 일부 의류 수출업체는 내수 폭발에 물량을 뺏겨 수출제품을 만들 하청공장을 구하지 못해 애태울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가 응원과 직간접 관련된 제품이나 다소 값싼 기념품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거액의 라이선스료를 지불하고 각종 제품을 미리 만들어 쌓아 놨던 중소기업들 가운데 재고처리 걱정이 태산인 곳이 많다.

D문구업체의 李모 이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의 호황을 되새겨 50만달러를 들여 휘장사용권을 얻었지만 준비한 제품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옷을 많이 판 코오롱TNS월드 관계자도 "가방·액세서리·생활용품 중에 빛도 못 보고 창고에 쌓인 제품이 많다"고 말했다.

신발업계 등에서는 월드컵으로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 커졌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토종 K축구화업체 관계자는 "전체 축구화 시장은 커졌다지만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유명 브랜드만 재미를 봐 우리 회사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광고비를 늘리면서 총력을 다했지만 큰 업체들의 마케팅 공세엔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정보력 부족 절감=당국의 지원도 대기업과 중소업계의 실력차를 좁히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이다.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4백10개사를 '월드컵 유망기업'으로 선정하고 전국 18곳에 중소기업 '월드컵 상품 전시·판매장'을 마련하는 등 월드컵 마케팅을 지원해 왔다.이에 대해 업계는 "지원이 형식적"이라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풍물 열쇠고리 업체인 L사 관계자는 "유망기업으로 선정된 뒤 관할 시로부터 공예품 보조비로 1백만원과 기념품 판매전에 참가하라는 안내장을 받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정보에 어두워 손해본 경우도 적잖다.경기장에 우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낭패를 본 업체가 일례.

특히 홍보·광고 등과 관련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제가 심한 데도 업체가 이를 몰라 곤욕을 치른 일이 잇따랐다. 한 업체는 모형 FIFA컵을 기념품으로 만들었다가 '높이 8㎝를 넘기면 안된다'는 규정에 묶여 고스란히 창고에서 썩혔다. 중기청 관계자는 "월드컵을 중소기업 제품의 대외 인지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려고 했지만 FIFA의 규제와 간섭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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