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히든 챔피언’ 꿈꾸는 CEO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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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닛샤(Nissha). 일본 업체로 현금인출기 등에 쓰이는 작은 터치패드 의 선두주자다.

게리츠(Gerriets). 유명 오페라 극장에 들어가는 초대형 극장막을 독점 생산한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히든챔피언』에서 소개한 각국의 ‘히든챔피언’ 기업들이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분야에선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곳이다. 다국적 대기업이 뛰어들기엔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은 어떤가. 히든챔피언을 취재하면서 만난 기업인은 대기업 간부들이 자주 다니는 길 주변에 빌딩을 사고 간판을 크게 세웠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한 중소기업의 얘기를 들려줬다. 협력업체가 이익을 좀 낸다고 생각해 납품 단가부터 깎으려 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엔 양면성이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대해 갑(甲)으로 군림하고, 후려치려 한다는 비판이 많다. 그래서 정부도 상생을 독려하는 것 아닌가.

반면 같이 크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전자·자동차·조선에서 국내 대기업은 세계 일류다. 동화엔텍 김강희 회장은 “국내 대기업과 함께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기업에 시달리며 버틴, 즉 검증을 마친 중소기업이라면 해외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글로벌화에 대한 의지와 전략이다. 그럴 능력을 갖춘 곳이 적지 않다. 나노신소재 박장우 대표는 “해외 진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깨고 외국어를 잘하는 인력을 확보해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기에다 중소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나 인식도 중요하다. 중소기업 경영자에 대한 존경심, 중소기업에 들어가 일해 보려는 모험심, 뭔가 자기 손으로 사업을 해보겠다는 창의적 정신이 두루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이게 모자란다는 게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중론이다. 단번에 되는 일은 아닐 게다. 히든챔피언으로 성공사례가 속속 나오면 사회적 여건과 인식도 바뀌어 선순환에 들 수 있다. 그러기까지 히든챔피언을 꿈꾸는 중소기업 CEO들께 응원 한마디를 보낸다. “파이팅!” 

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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