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들 옷 찢기고 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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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 공안당국은 13일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총영사관)의 정문 경비초소에 붙들어둔 탈북자 원모(56)씨를 강제연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외교관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비상식적 행동을 저질렀다.

○…탈북자 원씨는 아들(15)과 함께 오전 11시(현지시간)쯤 베이징(北京)시 외국공관 밀집지역인 싼리툰(三里屯)의 타위안(塔園)외교단지 내 한국 총영사관 서문 앞에서 택시를 내린 뒤 약 1백m를 뛰어 영사관 건물 정문(동문)에 들어섰다. 중국 외교부 소속 건물관리회사의 경비원 2명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치외법권이 보장되는 총영사관 영내로 함께 뛰어들었다. 이들은 원씨를 붙잡아 강제로 정문 밖 초소로 끌고 갔고, 원씨의 아들은 실랑이가 벌어진 틈을 타 총영사관 재진입에 성공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30명 가량의 병력을 총영사관 주위에 배치하고 이중 3명을 경비초소에 들여보내 원씨를 조사했다. 한국 총영사관 직원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초소 문을 지켰다.

○…오후 4시쯤 '경(京)OB 06282' 번호판을 단 흰색 승합차가 정문 앞에 멈춰섰고 10여명의 공안이 경비초소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을 지키던 총영사관 직원들은 "빨리 나오라"고 다른 직원들을 향해 고함을 쳤고 이준규 총영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뛰쳐나갔다.

그러나 공안들은 "비켜 서"라면서 강제적으로 초소 진입을 시도했고, "어딜 들어가"라는 한국 직원들의 고함이 터져나왔다. 일부 중국공안들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고 총영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원씨는 한평 남짓한 초소 내 바닥에 누워 "절대 안 나간다"고 버티며 비명을 질렀다.

공안들은 한국 직원들을 거세게 몰아붙였고, 이 과정에서 한국 총영사관 변철환·강효백·박기준 영사 등은 옷이 찢기거나 다리·얼굴 등에 상처를 입었다.박영사는 공안에 의해 10m 가량 끌려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8분 가량의 몸싸움 끝에 중국 공안들은 원씨의 사지를 잡고 끌고나와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 강제로 태운 뒤 사라졌다. 총영사관 직원들은 "중국이 도대체 어떤 얼굴로 국제무대에 서려고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일부 조선족 여직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였다. 끌려간 원씨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보일러 기술자로 1997년께 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씨의 부인은 북한에서 영양실조로 숨졌으며, 원씨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던 딸은 옌볜(延邊)자치주에서 인신매매단에 넘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은 한국 TV 방송사들의 현장화면 위성송출도 방해했다.KBS의 경우 이날 오후 8시30분(한국시간) 공안들의 한국외교관 폭행장면을 담은 화면을 중국 CC-TV의 위성망을 통해 송출하고 있었으나 송출 20초 만에 CC-TV측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송출을 막아 한국으로의 화면전송이 중단됐다. MBC도 8시40분쯤 위성송출을 예약했으나 송출 시작 20분 전인 8시20분쯤 CC-TV측에서 "관련 화면의 송출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해 왔다.MBC는 이에 대해 "탈북자 관련 화면이 아니다"며 위성 송출을 시작했으나 15초 만에 중단됐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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