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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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50년대 배고픈 시절에도 이른바 경품이라는 게 있었다. 눈깔사탕과 고무풍선 등을 한묶음으로 넣은 엉성한 포장 속에 비밀번호가 붙어 있었고 끝에서부터 몇자리 숫자가 맞아 떨어지면 딱지라고 불리는 작은 그림카드 몇장을 선물로 주었다. 구멍가게가 내건 경품은 연필이나 공책 등 학용품으로 바뀌었다.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경품은 상품 구매자만 행사에 참여할수 있는 사은품과 혼동·사용돼 왔다. 80년에는 한 백화점이 창립 기념 행사에서 5천원 이상 구매자에게 당시 50원 하던 껌 1통을, 1만원 이상의 경우 1백원짜리 소시지 1개를 사은품으로 주었다. 업계의 판촉 경쟁이 가열되면서 고가상품이 제공될수 있는 확률이 부여되는 경품행사도 자주 열렸다. 90년대에는 백화점 행사에서 경품으로 내걸린 상품이 처음에는 티코 승용차에서 체어맨으로 규모가 커졌고 건설업체와 손잡은 아파트 경품도 나왔다.

사은품에 비해 경품은 광고 효과가 매우 크고 자극적이다. 크리스마스 때 눈이 오면 응모자 가운데 몇명을 뽑아 특정 상품을 주겠다는 광고는 계절이 안겨주는 센시티브한 효과도 겹쳐 해당기업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 이와 반대로 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일부 백화점이 내건 경품행사는 한국의 16강 진출 좌절로 낭패를 보았다. 실의에 빠진 국내 축구팬들의 항의로 각종 경품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를 서둘러 철거하는 등 월드컵 흔적을 지우느라 야단법석을 피웠다.

올해 월드컵 대회 직전부터 인터넷 경품 정보 사이트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거의 모든 대기업들과 유통업체 및 금융기관들은 골 차 알아맞히는 골 대박,한국팀의 16강 진출시 고가상품과 해외여행 특전을 내건 16강 대박 등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경품행사에 들어갔다.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이 94% 이상으로 높아지고 각종 경품의 당첨 지수도 100까지 치솟다가 미국이 복병으로 나타나면서 잠시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경품의 규모는 당초 예상의 곱절이 되는 90억~1백억원어치. 파격적인 경품을 내걸었던 일부 기업들은 한국팀이 앞서갈수록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다. 외국 보험사에 들어놓은 재보험만으로 커버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와 함께 경품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는 결국 상품 가격에 포함될 '선물'을 기다린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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