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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라베르트 결장 우려가 현실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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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파라과이-남아프리카공화국의 B조 예선 첫 경기. 종료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2-1로 앞서던 파라과이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것처럼 미리 승리의 기쁨에 젖어 있었다.

말디니 감독과 벤치의 선수들은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운동장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 채였다.

그 순간, 남아공이 전광석화같은 중앙 돌파를 시도했고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상황이 연출됐다.

타바레이 골키퍼가 잠시 주춤하다 뛰어나왔고 공을 몰고 쇄도하던 남아공의 주마와 부딪쳤다. 지체없이 심판의 휘슬이 길게 울렸다.

그러나 이는 경기 종료가 아니라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휘슬이었다. 공격수를 향한 대시가 늦었던 골키퍼가 실점 위기에 몰리자 팔로 상대 공격수의 발을 걸었던 것이다.

이때 파라과이 벤치 한 구석에서 고개를 떨구는 선수가 있었다. 주전 GK 칠라베르트였다. 그는 FIFA에서 월드컵 예선 첫 경기를 뛸 수 없는 징계를 받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지난해 브라질과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경기 후 퇴장하는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 선수 얼굴에 침을 뱉은 때문이었다.

결국 파라과이는 종료 직전 추가점을 허용, 다 잡은 경기를 비기고 말았다. 스페인과 슬로베니아 등 유럽팀과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파라과이로서는 이겨야 할 경기를 놓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경기였다.

말디니 감독뿐 아니라 모든 파라과이 국민은 그 순간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37)선수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백전 노장인 칠라베르트가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적어도 '순진한' 파울로 페널티킥을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라과이는 칠라베르트가 뛰지 못하는 첫 경기에 대해 걱정을 해왔고,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뿐 아니다.

후반 초까지 2-0으로 앞서던 파라과이는 중반 이후 체력 열세로 허둥대다 골을 내주며 급격히 허물어졌다.

이때 노련미로 팀을 이끌어 왔던 칠라베르트가 있었다면 경기의 완급 조절을 통해 분위기를 다잡았을 것이라고 파라과이 팀 관계자는 아쉬워했다.

칠라베르트는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후배들을 한명씩 끌어안으며 위로했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뒤였다.

부산=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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