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미지의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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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주위는 요즘 장미꽃이 만발하다. 월드컵 축구 대회를 계기로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선수단·관람객·취재진과 비즈니스맨들을 환영하는 뜻으로 꽃 장식을 해 놓았다. 월드컵 기간 중 무역센터에는 국제미디어센터가 입주해 있다.이곳에서는 또 세계적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모이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무역센터가 꽃단장을 한 더욱 큰 이유는 이번 월드컵이 우리나라 무역과 경제에 큰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 홍보 효과가 크다. 6월 한달 세계 각국의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되고,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이 50만명, TV를 통해 한국을 지켜보는 인구가 자그마치 20억명(연인원 6백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제값 받고 수출할 수 있어

우리나라는 6년 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으나 국가 이미지 면에서는 다른 국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제품은 선진국의 같은 제품에 비해 품질에 손색이 없으면서도 가격 면에서는 불리한 대우를 받는 사례가 많다. 선진국과 비교한 우리 상품의 수출 가격은 품목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0% 가량 낮은 실정이다.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는 것은 수출 신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수출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다. 상품 속에 담긴 국가 이미지와 문화, 기업 브랜드, 디자인 등을 동시에 거래하는 복합무역(複合貿易)의 속성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국가 이미지 개선은 우리 무역이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이 점에서 월드컵은 우리나라를 알리고, 국가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알릴 만한 것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추락했던 국가 신인도가 A등급을 회복했다. 또 지식 정보화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해 세계적인 수준의 정보기술(IT)산업과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빠르게 성장하는 동북아의 거점 국가로서 각국 기업의 주목을 끌고 있다.

월드컵 개최가 국가 이미지 개선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음은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디지털 기술의 실험장인 한국은 월드컵을 계기로 미국·유럽보다 앞선 IT 기술을 과시할 훌륭한 기회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에 앞서 "한국이 구조조정을 통해 아시아 경제 발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번 월드컵 대회 기간에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 너와 나가 따로따로여서는 안된다. 개개인이, 각계각층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 냉철히 판단하고 미래를 생각해 제몫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은 월드컵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문화인으로서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외국 기업인들에게 붉은 띠·화염병으로 투영된 강성 노조국의 이미지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지 못함은 물론 외국인 투자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월드컵을 볼모로 삼은 파업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노사 문화의 선진화없이는 기업도, 노조도, 국가도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사문화·정치 업그레이드

월드컵을 계기로 정쟁(政爭)이 다소나마 수그러든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정치 때문"이라는 후쿠야마 교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치권은 월드컵을 계기로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욱 성숙한 정책 경쟁의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바람을 외면해선 안된다.

결국 월드컵의 성공 여부는 알릴 만한 것을 얼마나 잘, 제대로 알려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그동안 홀대를 받아온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시적인 가식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 기업과 근로자, 국민 개개인의 진지한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월드컵의 계절 6월을 맞아 우리 모두가 꼭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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