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 움직인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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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35면

인산인해란 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상하이 엑스포 현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중국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하고 그들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부풀어 있다. 바야흐로 중국의 시대가 열리는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은 2010 상하이 엑스포에서 중국은 자국 주제관의 키워드, 중화(中華) 그 자체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사방에 중국말밖에 들리지 않는 엑스포 현장에서 국가관에 투영된 한·중·일의 현재를 목격했다.

먼저 일본관을 둘러봤다. 아시아 국가 중 제일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열강이 된 일본 전시관은 잘 짜인 교과서 같았다. 일본식 정원 등의 전통적 삶의 모습으로 시작해 현대 도시 생활의 면면에서 환경을 개선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안들을 소상하고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에코 카와 태양광 유리창 등이 돋보였다.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는 일본이 자랑하는 로봇 기술(도요타)과 HD 카메라 디스플레이 기술(파나소닉)이었다. 특히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봇의 팔은 ‘저게 과연 로봇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움직였다. 이 전시관은 일본인의 진지하고 성실한 탐구정신과 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일본인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보다는 기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국관으로 가 보니 유구한 역사적 전통과 거대한 스케일이 압도적이었다. 엑스포장의 중앙에서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고 여타 국가관보다 10m 이상 높은 단 위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건물이다. 내부로 진입하면 ‘청명상하도’라는 북송대의 유명한 풍속도가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해 길이 130m의 병풍 같은 스크린에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장관이지만 감동은 없었다.

맨 위층에 가니 아이들의 그림이 수백 장 전시돼 있었다. 평균 10세 전후의 아이들 그림치곤 꽤나 정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보다 전시의 정점이 왜 아이들 그림일까 하는 의문이 더 강했다. 답을 얻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국이 현재와 같이 연 8% 성장을 하고 미국은 3% 수준을 유지한다면 2040년,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40세가 되는 때 중국은 경제 규모 세계 1위의 명실상부한 강성 대국이 된다. 팍스 시니카에 동심이 동원된 현장은 그리 맑지 않았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한국관에서는 사람 냄새가 풀풀 났다. 전통과 역사를 애써 끌어온 흔적도, 과학적·철학적 고민과 깊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2010년 한국인의 현 모습을 철퍼덕, 있는 그대로 눈앞에 펼쳐 놓았다. 조민석의 건축은 정제된 조형미가 아닌 변화무쌍하고 개방적인 디지털적 감성을 건축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수작(秀作)이다. 건물 외벽을 장식한 강익중의 3만8000개 아트 한글타일들은 인터넷상에서 마주치는 재미있는 문장들로 만담의 꽃을 피우며 긴 줄과 더위에 지쳐 있는 관객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단지 그 즐거움이 한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쉽다.

한국관의 압권은 이번 엑스포의 주제인 도시의 비전을 보여 주는 주제 영상이었다. 이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경쾌한 터치로 혼합해 현실과 판타지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세련된 영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방신기 등 한류 스타들의 화려한 출연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 도시의 중심에 장애인 소녀가 있고, 그 소녀의 깨진 마음까지 헤아리는 한국인의 따뜻함이 가슴에 그대로 와 꽂혔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인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어느 엑스포에서도 주제 영상이 이토록 뜨거운 감흥을 자아내는 것을 보지 못한 나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 우리의 경쟁력은 기계도 역사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우리는 약자의 마음을 보듬는다. 아픔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안다.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굴곡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을 잃지 않는 정의 민족이다. 게다가 빠르고 즉각적이다. 진부한 권위와 꽉 막힌 위계 질서를 참지 못하는 우리에겐 평등의 욕구가 강하다.

정(情)의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한국민은 디지털 시대의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들이다. 만약 우리 안에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국수주의적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에서 그 가능성을 본 나는 힘이 아닌 감정의 교류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팍스 코리아나를 꿈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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