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떠나 고추 농사 짓는 '서울대 출신 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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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의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고 산골로 내려와 꿈많은 여자 화가와 함께 살면서 고추 농사를 짓는 중년 남자.

요즘 방영되는 MBC-TV 드라마 '위기의 남자'를 생각케 하는 이 사람은 송성일(宋晟一·40·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1리)씨다. 4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최근 고추 직거래를 위해 사이트(www.greengochu.com)를 열고, 이웃에 유기농법을 권하고 있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宋씨는 한동안 ㈜럭키 홍보실 직원으로 근무한 뒤 출판사를 경영했다.

그러나 4년 전 어느날 "그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봉화로 내려왔다. 그는 풍호1리의 값싼 땅 1천평을 사들여 정착했다.

외지인인 宋씨는 처음엔 주민들의 차가운 눈길을 받았으나 그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서 점차 친해졌다. 그의 부인도 고추를 딸 때면 어김없이 팔을 걷어붙인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시골 학교로 옮겼다. 주민들은 宋씨를 새마을지도자로 뽑았다.

"참 힘들고 이익을 내기가 어렵네요. 뜻밖에 홍수와 병충해가 납니다. 농산물 제값 받기는 더 힘들죠."

고추값이 너무 싼 데 따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도시 직거래와 유기농법을 생각해냈다. 농약과 비료를 종전보다 훨씬 덜 써 고추를 키웠다. 그랬더니 고추 한근 값이 지난해 4천원에서 올해 8천원으로 올랐다. 소문이 나자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宋씨는 "무슨 일을 하든 즐기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봉화=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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