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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의회, 구청장 3중벽에 막힌 ‘디자인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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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일 서대문구 성산로에서 인부들이 디자인거리 조성을 위해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고 있다. [오종택 기자]

1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연세대 동문회관 앞 보도. 포클레인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있다. 인부 3명은 한쪽에서 바닥에 새로 깔 화강석 자재를 쌓고 있다. 가로수 주변 경계석과 맨홀 뚜껑에도 교체를 위해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다. 공사 시작 지점에는 ‘성산로 디자인 거리 조성 사업’이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디자인 거리는 서울시가 쾌적하고 아름다운 거리환경을 만들겠다며 걷기 편하고 미감이 뛰어난 재질로 바닥을 교체하고 공공시설물·가로등·교통안내판 등도 조형미가 뛰어난 제품으로 교체하는 사업이다. 성산로 600m 구간을 디자인 거리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0억원. 서울시가 18억원을 지원하고 서대문구가 2억원을 부담한다. 이 공사는 성동구 왕십리길, 관악구 관악로 등 13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에도 동대문구 장안로, 서초구 반포로 등 20곳에 디자인 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민선 5기 서울시의회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 의원들이 부정적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조규영(구로2) 시의원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쓸 만한 가로등을 보기 좋은 것으로 꾸미고 치장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닌지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시의원들을 설득한다 해도 고비는 또 있다. 전체 예산 가운데 10%가 구청 예산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민선 5기 서울 구청장 25명 가운데 21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구청장이 시의 정책에 동의해도 구의회가 구비 사용을 승인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서울시 25개 구의회 가운데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한 곳은 7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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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추진하는 ‘디자인 서울’ 사업에는 이 밖에도 해마다 300억~400억원을 투자하는 디자인산업 육성, 73억원이 들어가는 디자인한마당(디자인올림픽) 등이 있다. 이들 사업이 시의회의 예산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삭감될 경우 내년부터 사업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4년 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지 보름 만인 2006년 7월 19일 ‘서울특별시 도시디자인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 4조 1항은 ‘서울시장은 디자인서울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고 정해 놓았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옥외광고물, 공공시설물, 공공건축물 등 시설물·건축물의 유형에 따라 ‘설치 때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을 담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옥외광고물의 경우 업소당 간판 총수량을 최소화하고 간판이 건물에서 점유하는 면적을 제한하고, 색채는 1~3가지 정도로 절제할 것 등을 권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민선 4기에서는 이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졌다. 조례 4조 2항은 ‘시장, 구청장 및 그 밖의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시설물 등의 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디자인서울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 조례는 상위법이 없는 자치 조례여서 구청장이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구속력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영호 서울시 시설물디자인팀장은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해 만든 가이드라인이어서 이를 준수하면 도시 미관이 아름다워지고 통일성도 기할 수 있다”며 “당적이 다르다고 가이드라인을 도외시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디자인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은 “디자인은 압축 성장의 상징인 하드시티 서울을 매력 있는 소프트 시티로 바꾸는 일”이라며 “런던·베를린·요코하마 등 세계 유명 도시들이 디자인을 통해 또 한번 도약을 노리는 데서 알 수 있듯 디자인이 미래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글=박태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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