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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에서 북한의 미래를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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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북한 축구는 당당했다. 세계 최강을 맞아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도 여전히 놀라웠다. 전반에 선제골을 내줬어도 강하게 들러붙었다. 정말 세계 축구사에 길이 남을 ‘사변’을 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후반 7분 46초. 추가골이 터지자, 북한 축구는 급속히 무너졌다. 이젠 전혀 다른 팀이었다. 바로 몇 분 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후반 10분, 14분, 35분, 41분, 43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실점은 쌓여갔고, 북한 축구는 참담하게 침몰했다.

지금은 강해 보이는 북한 체제도 어느 한순간 그렇게 허물어질 것이다. 지난 60년 이상을 버텨왔고, 냉전의 해체 이후 망망한 자본주의 바다의 외롭고 작은 사회주의 돛단배로서도 20년을 견뎌왔다. 물론 그 내구력은 앞으로도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현재의 체제로는 시간이 갈수록 발전은커녕 생존조차 힘들어질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대범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붕괴의 조짐은 조금씩 커져만 갈 것이다. 마치 시멘트 담장에 금 가듯, 야금야금.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붕괴를 시작할 것이다. 놀라운 가속도로. 겉보기엔 단단했으나 무너지니 하염없던 북한 축구의 속살처럼.

실제로 이미 북한 체제는 불안하다. 44년 만에 처음으로 당대표자회를 소집한 것도 수상하다. 그만큼 정상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과 느닷없는 천안함 도발도 붕괴의 소리 없는 전령일지 모른다. 이제 스물 몇 살인 3남에게 권력을 세습하려 하고 매제에게 후견인 지위를 부여한 것 또한 체제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우선은 너무도 당연히, 언제 현실화될지 모르는 북한 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 포르투갈과의 경기로 따지자면, 아직은 후반전 킥오프 직후 혹은 전반전 막바지 무렵쯤의 시점이겠지만.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붕괴를 막는 방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더욱 부합하고 북한 주민에게도 고통을 덜 주는 탓이다. 따라서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체제의 선진화를 추진하며, 정상 국가로의 변모를 시도하도록 이끄는 세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 전략은 남북의 ‘교량’을 건설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출발한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대북정책의 차이는 ‘교량’의 건설 방식에 대한 차이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교량’을 많이 만들자는 방식이었다. 나무로 만들든 돌로 만들든, 많이 만들다 보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화해협력’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주고라도 ‘교량’ 건설에 집착했고, 임기 말이라도 ‘교량’의 개수를 늘리기 위한 합의를 한 셈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교량’의 질이 중요하다는 방식이다. 무조건 많이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를 만들어도 철근 콘크리트로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상생공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건설비용도 분담 방식이다. 우리가 ‘3000’을 감당하겠으니 북한은 ‘비핵·개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략은 남북의 ‘교량’을 넘어 한반도의 ‘입체교차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단선적 시각을 복합적 네트워크로 확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북 양자의 관계로는 천안함 문제의 해결은 물론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한·미동맹으로도 불충분하다. 아무리 미국이 지지한들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안보리 의장성명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변 4강으로 통하는 주도로와 세계 곳곳으로 나가는 보조도로의 ‘입체교차로’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도로는 보수하고, 미흡한 접근로는 확대해야 한다. 중국의 냉정함을 서운해할 것도 없다. 그동안 우리의 대중 접근이 그만큼 부족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젠 남북 통로 위에 다양한 소통 경로의 정교한 조합이 있어야 하고, 우리는 주도적으로 그것을 건설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 간에 ‘교량’을 만들든 혹은 5·24 대북조치처럼 기존의 ‘교량’마저 끊어버리든, ‘교량’의 시각에 머물러 있어서는 우리가 희망하는 북한의 변화는 무망하다. ‘입체교차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북한 체제의 붕괴에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