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서 배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일랜드는 한반도의 3분의1 정도의 국토 면적에 3백80만명을 약간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서유럽의 변방 소국이지만, 제임스 조이스·윌리엄 예이츠·오스카 와일드·새뮤얼 베케트·조지 버나드 쇼와 같은 당대 세계 최고의 작가와 시인 등 문학인을 배출해 이미 4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갖고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빈곤에 찌든 나라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일랜드는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소위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경제에 비유한 '켈틱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게될 정도로 고속성장을 이룩하고 있어 세계인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 아일랜드는 최근 수년간 세계적 전문기관들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항상 상위 10위권 내에 들어가게 됐으며, 1995~2000년 연평균 9.3%의 고속경제성장을 이룩해 냈다. 이러한 놀라운 경제적 업적을 통해 급기야 아일랜드는 소득수준 면에서 오랜 기간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앞서게 된 것이다. 도대체 아일랜드 경제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그 비결은 고부가가치의 제품과 서비스를 산출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최대한 유치해 근로자들의 고용확대와 국민 복지증진을 꾀하는 국가경영전략을 채택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더블린에 와서 지난 며칠간 만났던 아일랜드의 전·현직 정부 고위 인사들과 기업인, 그리고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높은 국민교육 수준과 정부의 기업친화적 시책들이 아일랜드 경제에 대한 외국기업과 투자가들의 신뢰를 쌓는 데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아일랜드의 FDI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55%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5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의 FDI는 주로 화학, 의약, 건강,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자, 금융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돼 있다. 99년 현재 6백여개의 미국 회사가 아일랜드 산업생산의 3분의2와 산업제품 수출의 70% 이상을 맡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영어사용과 4천여만명에 달한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미국 FDI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윤추구가 주 목적인 미국기업들이 이러한 이점만을 보고 아일랜드에 투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FDI를 유치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펼쳐온 여러 가지 시책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아일랜드는 기업부문이 경제성장과 국민복지 증진의 원천이라는 기본시각에서 나온 기업 친화적 제반시책을 정권교체와 관계 없이 꾸준히 펴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는 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제조업과 관련 서비스업에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10%)을 적용해 왔다. 더욱이 이 낮은 법인세율의 적용도 투명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아울러 87년부터 3년마다 정부·노조·사용자 등 주요 경제주체 간의 '사회적 파트너십' 합의를 통해 노조의 임금인상 자제와 함께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큰 사회적 마찰 없이 이뤄내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러한 시책과 함께 FDI 유치에 도움이 되는 기타 여건도 꾸준히 마련돼 왔다.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EU)과 유럽통화 체제에 일찍이 가입함으로써 경제안정을 이룩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경제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 온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경제규모나 산업구조면에서 크게 다르지만 세계화 시대의 이점을 현명하게 활용하려는 아일랜드의 국가경영전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기업친화적 국가경영과 경제시책을 꾸준히 펴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책이 펼쳐질 때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높아지고,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복지가 최대한 증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블린에서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