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문화 키워드] 공연 -'리노베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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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명동 옛 국립극장 복원사업의 조감도. 2007년 11월 극예술 전문극장으로 문 연다.

올해 공연계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리노베이션'이다. 건물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과 함께 최근 국내외에 문을 연 신축 공연장의 첨단시스템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다.

우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1979년 개관)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73년 개관)이 각각 지난 2월 말과 10월 말에 새롭게 단장하며 재개관했다. 전에도 매년 공연 비수기에 7~10일간 무대를 점검한 적은 있었으나 6개월 이상 휴관하면서 대규모 공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예술의전당 음악당(콘서트홀.리사이틀홀)도 내년 1월 2일부터 5월까지 리모델링 공사로 휴관에 들어간다. 개관 20년 정도 지나면 리노베이션은 필수사항. 80년대에 개관한 지방 문예회관도 줄줄이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있다.

지지부진했던 명동 옛 국립극장 복원사업도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20일 설계경기 심사에서 삼우설계의 작품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예술의 빛과 시간의 산책'이라는 주제 아래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설계에 담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옛 국립극장은 내년 10월 착공, 2007년 극예술 전문극장(600석)으로 변모한다. 지상 1층에 로비, 2~4층에 객석, 5층에 카페가 들어선다.

리노베이션에서 건물.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은 기본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마감재나 객석 의자 교체에 그치지 않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했다. 붉은 카펫이 깔린 귀빈용 중앙계단을 과감히 철거한 것. 애초 설계에 없었으나 개관 직후 청와대의 지시로 새로 보탠 것을 헐어냈다. 새로운 공연장 운영 이념에 맞는 공간 재배치다.

객석 의자 간격의 변화로 객석수도 달라졌다. 세종문화회관은 78년 개관 당시 3852석으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것이 의자 폭과 앞뒤 간격을 늘려 3100석으로, 국립극장은 의자의 앞뒤 간격을 1.1m에서 1m로 줄여 객석 수를 오히려 늘렸다. 국내 극장 중 앞뒤 간격이 가장 넓어 공연 도중 잠이 잘 온다는 지적 때문이다. 1층 객석의 경사도를 13% 높여 시야를 넓혔고 뒤늦은 입장객을 위해 출입구 옆 방에 투명 유리 너머 무대를 볼 수 있는 '대기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장애인 시설 등 편의시설 확충에 치중한 것에 비해 공연장에서 가장 중요한 음향을 끌어올리는 데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극장이 잔향(殘響) 시간을 1초3에서 1초4로 늘렸을 뿐이다. 세종문화회관은 건축 음향으로도 충분히 잔향 시간과 음압(音壓)을 늘릴 수 있는 데도 전기 음향보정(補正)장치를 도입해 아쉬움을 남겼다.

예술의전당은 콘서트홀 무대 천장에 가변식 보조 음향 반사판을 설치하고 실내악 공연을 위한 이동식 음향 반사판을 마련하려던 애초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섣불리 손댔다간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서다.

현재의 음향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음악당 객석 의자 몇 개를 철거해 새 의자 제작을 맡은 일본 고도부키사에 보냈다. 하지만 리모델링 공사가 음향 개선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극적인 태도다. 리노베이션이란 낡은 시설을 보수하는 단계를 넘어 공연장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개혁'이기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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