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저항에 조직改革 손 못댔다":어제 퇴임한 김 광 웅 인사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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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혈전(血栓)이 끼듯이 인사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얽혀 부처의 업무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金위원장이 지난 21일 이임식을 대신해 개최한 중앙인사위의 비(非)공개 세미나에서 이렇게 회고한 사실이 2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뒤 공직사회에서는 논란이 벌어졌다. 당초 그와의 인터뷰는 6월 초로 예정돼 있었다. '공직 인사정책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이런저런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가 한달 전쯤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당시 그는 "퇴임 전 인터뷰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면서 "교수연구실에서 관악캠퍼스(서울대)를 내려다보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얘기하자"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임사의 보도로 '평화'가 깨진 이상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퇴임일인 2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그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3년 동안 고위 공직자로 있다가 정작 나가면서 정부를 비판한 이유는 뭔가' .

집무실에 앉자마자 이 질문부터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얘기하고 나왔다.

"혈전 운운해 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심지어 청와대 일각에서는 '연임이 안됐다고 서운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는 기가 막힌 반응까지 나왔다. 나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미 물러나겠다고 몇차례 얘기했었다.단지 공직 인사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느낀 바를 우리 식구(직원)들에게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재임 때나 잘하지…"하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고 하자,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물론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한다. 미흡한 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나와 중앙인사위 가족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중앙인사위는 기형아로 탄생했다. 다른 위원회에 비해서도 너무 초라하게 출발했다. 차관급도 없다. 직원은 80여명 정도고…. 법령을 다룰 권한 역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힘있는' 부처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관료조직이나 청와대 인사들과 부닥쳤던 사례를 특유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풀어놓았다. 하지만 안경 너머의 눈빛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계급제를 고수하려는 정부 내의 저항에 속수무책이었다. 중앙인사위는 계급제를 뜯어 고쳐 직위분류제로 가려 했다. 그래서 2년 넘게 싸웠다. 하지만 결국 국가공무원법에 이를 명시하지 못했다. 행정자치부 등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고시 개편안 역시 청와대 행정관의 손질로 시행이 연기됐다."

민주정부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중심 원리가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행정조직은 견제만 있고 균형은 없다는 것이다.

"부처 마찰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한다.대통령에게 '부처가 소모전만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일부 장관이 불편해 했다."

관료조직의 큰 단점은 누군가의 얘기처럼 '경계를 넘어 연관을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해 말 개각을 앞두고 후보 명단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중앙인사위에 국가인재 DB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린 뒤 관련수석실에서 경위서를 내라고 하더라.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본 것이다. 좋은 인재를 뽑는데 영역이 어디 있는가. 얼마나 닫힌 사고인가."

그는 이런 불만이 대통령이나 청와대 전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일부 관계자와 관료조직에 대한 비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일각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사람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하며, 혈연·지연·학연 등을 능력·성과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그는 걱정했다.

한시간 가까이 격정적으로 얘기하던 그는 동그란 안경을 벗고 잠시 눈을 비볐다. 이쯤에서 인사 편중 논란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인사심사 때마다 이런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고위직의 지역분포표를 놓고 균형을 따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슬펐다고 했다. "지역과 상관 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해야 정상 아니냐"고 되물었다.

"5·6공 때 핵심 자리(대통령 비서실장·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는 거의 모두 영남 사람으로 채워졌다. 안기부장(옛 국정원장) 중 호남출신은 장세동씨가 유일하다. 이 정부 들어 지역별 분포가 비슷해졌다. 중앙인사위가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그는 공직자들의 언어가 너무 권위적이라고 꼬집었다. 명사와 명사를 조사없이 이어가는 글이 대부분이고, 강한 부사를 쓴다는 것이다. 또 특단·대책·강력·조치 등의 표현을 좋아하다고 덧붙였다.

"명사만 이어지니까 나도 공문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다. 이래서야 일반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일종의 은어처럼 느껴진다. 마르크스의 얘기처럼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게 되는데, 단어만 있고 문장을 엮을 수 없다면 사고가 굳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거대한 기계라고 그는 비유했다.

"기계는 톱니바퀴가 물려야 움직인다. 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안한다. 다른 생각을 가지면 튄다며 비난한다. 그래서 다양한 생각을 갖고있던 젊은 사무관들도 1~2년새 모두 굳어진다."

"너무 이상주의자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개혁은 내 생각과 거리가 있다"고 그는 밝혔다.

"기본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모순구조'를 깨야 했다. (이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책의 제목이라고 했다). 세련되고 정리된 유럽 사람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는 광란과 무질서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은 볼줄 모르면서 야만성만 떠올린다. 개혁주체(유럽)는 개혁대상을 아프리카처럼 보면 안된다. 내 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청와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통령이 캠페인 과정에서 손발이 맞았던 사람과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혈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중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대선운동과 정부에서 일하는 것을 엄격히 구분했어야 했다. 가능하면 인재를 더 널리 구했으면 좋았겠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사회에서 사라지길 희망했다.

"학교 있을 때부터 '대통령 부(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대통령 집무실부터 바꾸자. 비서실들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지 대통령과 비서관들이 만나 국정을 조율할 수 있다. 의전절차도 까다롭다. 한번 만나려면 무슨 절차가 그렇게 복잡한지…."

그는 그러나 지난 3년간의 공직생활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직원들과 재미있게 일하면서 탁구도 치고, 노래방도 가고….'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채워지면서 느끼는 행복'을 느꼈다는 것이다.

공직 개방과 공무원 보수 현실화, 고시제 손질 등 적지않은 일을 처리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인사정책지원시스템을 갖춘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기관장들은 이를 통해 인적 자원을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면서 학교(서울대 교수)로 돌아가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을 향해 어린애처럼 웃으며 떠나갔다, 자신이 아끼던 장서 3백권을 남기고. 그러나 정작 남긴 것은 '열린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인 것 같았다.

필자가 중앙인사위 청사를 나섰을 때 멀리 보이는 청와대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만난 사람=사회부 이규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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