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임금과 애비의 원수를 갚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간첩.

손자는 그가 쓴 병법에서 '실정을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에게 물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일의 경험을 통해서 추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법칙에 따라서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들음으로써만 적의 실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후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간첩이라고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김양을 김명이 보낸 첩자라고 생각했던 김우징의 판단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었다.

"하오나 나으리."

예징이 대답하였다.

"이미 김양의 아내 사보는 목숨을 끊었나이다. 김양의 아내 사보는 반적 이홍의 딸이었으나 목숨을 끊어 김양은 이미 이홍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절연한 사이가 되고 말았나이다. 한때는 김양이 부인의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더이다. 이를 전해들은 이홍이 한 때 사위였던 김양을 체포하여 그 생간을 씹어 복수를 하려한다는 소문 역시 파다하게 퍼져나가고 있나이다. 하오니 김양을 반적이 보낸 간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나이다."

예징의 충고 또한 사실이었다.

반적 이홍의 딸인 사보가 죽음으로써 김양과 이홍의 인연이 끊긴 것이라면 더 이상 김양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처자와 근신 몇명만 거느리고 청해진에 도망쳐 와 장보고 대사에게 몸을 기탁하고 있었던 김우징으로서는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합류한 김양의 존재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큰 원군이었던 것이다.

이 때의 기록이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김양이 소식을 듣고 모사와 병정들을 모집하여 2월 중에 해중으로 들어와 김우징을 만나보고 함께 거사할 것을 모의하였다."

이처럼 김양을 간첩으로 의심하고 있던 김우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천사옥대보다도 아내 사보의 죽음이었으니 김양이야말로 세명의 계집을 통해서만 천하의 권세를 얻을 수 있다는 낭혜화상의 참언대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간웅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 그날 밤.

군영에서는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 김양을 축하하는 주연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축하의 기쁨도 잠깐, 주연이 벌어지자마자 곧 서라벌로부터 비보가 날아든 것이었다.

그것은 김명을 비롯하여 이홍·김귀(貴)·김헌숭(憲崇)일당들이 궐내로 쳐들어가 근신들을 죽이니 왕과 왕비가 온전치 못함을 알고 목매어 죽었으며, 그뿐 아니라 김명은 스스로 찬위하여 왕위에 올랐다는 흉보가 날아든 것이었다.

불과 2년 사이에 김명은 두명의 대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일찍이 신라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전인미답의 잔인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우징이 술을 마시다 말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통곡하여 말하였다.

"아비가 반적의 손에 죽음을 맞았으니 지금껏 김명은 함께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였소이다. 하지만 이제 새 대왕마저 김명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이는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철천지원수인 것이오."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

원한이 하늘에 사무칠 만큼 크나큰 원수.

이때 김우징은 장보고에게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김명은 임금을 죽이고 자립(自立)하여 왕이 되었고, 이홍도 함부로 군(君)과 부(父)를 죽였으니 이들은 하늘을 함께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장군의 병력에 의해서 임금과 애비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반드시 허락하여주시옵소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