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천안함 대중 전략 재고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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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은 왜 이렇게 북한을 감쌀까. 그 해답은 북한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김정일 후계체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적 소통강화’ 등 5개 항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후적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합의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김정은 체제’ 정립이다. 둘째는 나진·선봉 개발 방식이다. 북·중 합작이 아니라 중국 주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국은 북한에 대해 식량을 포함한 경제지원을 하고, 북한은 6자회담에 대해 중국과 보조를 맞추기로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에서 귀국한 지 2주일도 안 돼 국방위원회와 내각 개편을 위한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공고했다. ‘김정은 체제’에 북·중 수뇌부가 합의했다는 첫 신호탄이다. 인사 내용도 ‘중국 냄새’가 짙다. 매제이자 중국통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위원을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일성의 비서실장을 세 번 역임한 최영림(81)을 총리로 기용했다. 부총리에는 강능수(86) 등 70, 80대 인사를 임명했다. 김일성 시절, ‘조·중 친선’의 경험이 농축된 인사들이다. 오는 9월 당대표자회를 44년 만에 개최하기로 공고한 것은 둘째 신호탄이다. 김정은 체제 정착을 위해선 당중앙위원회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는 당대회나 당대표자회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중은 ‘김정일 후계체제 수립’ 합의를 계기로 사실상 일심동체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의 안정을 ‘양보할 수 없는 국익’으로 확정한 중국으로선 후계체제가 잘 착근(着根)하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경제지원과 한반도 안정이 요체다. 북한도 후계 문제를 포함한 중요한 내정이나 핵문제 등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춰나갈 것이다. 천안함 사태에서 중국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의 대중(對中)외교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중국이 이렇게 북한을 비호하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작동할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의 후계체제 착근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기간 동안 중국의 현 외교기조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중국 설득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다른 주제로 화두를 돌릴 필요가 있다. 6자회담 같은 것이 한 예다.

안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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