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車보다 자전거가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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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총장 관사에서

학교까지는 14㎞.

눈비가 쏟아져도

거르지 않는다.

처음엔 '쇼' 아니냐는

비아냥도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돈·시간 아끼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오전 7시40분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 본관 앞. 가랑비 속에서 헬멧에 선글라스를 낀 장년의 남자가 사이클을 타고 나타났다. 딱 달라붙는 운동복에 방수 점퍼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사이클 선수다. 자전거에서 내리는 그에게 수위가 깍듯이 거수경례를 한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이 대학의 박찬석(62)총장이다.

그의 하루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벌써 7년째다.

박총장이 관용차 대신 사이클을 택한 것은 1997년 9월. 94년 총장에 취임한 이후 바쁜 일정에 쫓겨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자 자전거 출퇴근을 결심했다.

총장 관사인 수성구 지산동에서 학교까지 14㎞구간을 오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오전 7시에 집을 나서면 씽씽 달리는 자동차와 힘든 오르막길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비나 눈이 올 때는 승용차를 타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체인이 끊어져 고치느라 끙끙댄 적도 수차례 있었고, 가장 작은 기어는 톱니가 망가져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동안은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등 힘도 들었어요. 그러나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지요."

처음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먼길을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겠나. 저건 '쇼'다. 총장이 정치를 할 모양이지"라는 등 호사가들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건강을 위해 하는 일인데 누가 뭐라하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그의 자전거 출퇴근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오해는 풀어졌고 교수·교직원들 가운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자전거 출퇴근은 큰 도움이 됐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어깨를 낮추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어서 어깨 결림 등 흔히 경험하는 '오십(五十)견' 증세도 없었다. 다리 운동이 돼 근력이 강해진 것은 물론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자전거는 미국에 있는 동생이 사준 것이다. 몸에 무리가 생길 것 같아 미국산을 사달라고 했다. 가격은 1천달러. 그는 지금도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출근한 뒤에는 총장실에 놓아둔 양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한다.

퇴근 때는 다시 운동복을 입고 핸들을 잡는다. 공식적인 일이나 술 약속이라도 있을 때는 관용차에 자전거를 싣고 퇴근한다.

아파트 13층이 관사인 탓에 자전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보관 장소는 아파트 거실이다. 마땅히 밖에 놓아둘 장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난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젠 비나 눈이 웬만큼 오면 자전거를 끌고 나선다. 습관이 돼 자전거를 타지 않곤 좀이 쑤신다고 한다. 그래서 '자전거 예찬론자'가 됐다.

"처음엔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길도 울퉁불퉁해 탈 형편도 못됐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주 좋아졌습니다."

2년 전엔 출근길을 정비해준 문희갑 대구시장을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곤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했다. 문시장이 좋다고 선뜻 대답하자 아예 자전거를 구입해 시장 관사로 갖다 놓았다. 하지만 문시장이 자주 이용하지 않아 조금 섭섭한 눈치다.

자전거를 타면 나름대로의 '철학'도 생긴다고 주장한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행복'의 의미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환경·교통·경제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내에서만이라도 자전거를 탄다면 한해 20억달러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공해 문제와 도심 교통난도 저절로 해결되지요."

자전거를 타면 차량 연료비와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덕에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박총장은 "도로는 아무리 넓혀봐야 늘어나는 차량 때문에 막힐 수밖에 없다"며 "유일한 대안이 자전거 타기"라고 강조한다.

그는 요즘 이사할 집을 구하고 있다. 오는 8월 말로 총장 임기가 끝나 관사를 비워줘야 하지만 동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이사하기가 곤란해서다. 오래된 아파트인 탓에 엘리베이터가 좁아 자전거를 들고 타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새 아파트를 물색 중이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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