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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사건·항명파동 … 경찰 왜 이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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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경찰을 볼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범인을 코앞에서 놓치는 헛발질 경찰, 스스로 야수(野獸)로 돌변한 성폭행범 경찰, 가혹행위로 엉터리 자백을 받아내는 고문경찰에다 급기야 일선 서장이 직속 상관에게 공개적으로 대드는 하극상(下剋上)까지 연출했다.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이런 경찰에 치안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은 그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항명(抗命) 파동을 일으켰다.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책임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양천서 가혹행위 사건을 사례로 들며 검거실적 압박이 가혹수사를 불러왔다는 논리를 폈다. 채 서장의 주장이 설혹 맞다 하더라도 표출방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경찰은 조직 특성상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가치가 중요한 ‘제복 집단’이다. 경찰법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를 수사해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 임무다. 시위 진압이나 범죄 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상하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상관의 지휘방침에 불만이 있다고 기자회견이나 라디오방송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쏟아내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는 기강 문란 행위다. ‘경찰대 1기 졸업생으로 25년째 일해 온’ 경찰 간부라면 더더욱 취할 자세가 아니다.

모든 제도에는 언제나 결함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파동의 발단이 된 실적주의는 형사 부서의 경우 강도, 살인, 강간, 절도 범죄 유형별로 점수를 주고 경찰서의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점수에 매달리다 보니 인권을 등한시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어느 곳에나 경쟁은 있다.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의 묘를 살리도록 손질하는 게 맞다.

채 서장의 돌출 행태에 대한 응분의 조치와는 별개로 그가 제기한 경찰 내 문제점들에 대해선 자체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항간에 떠도는 대로 경찰대와 비경찰대 출신의 갈등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기강을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