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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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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난 여든다섯이네."

"나는 아흔셋이야. 하지만 신경 쓰지 마시게. 요즘 누가 나이를 따지나."

10년 뒤면 이런 인사 차림이 흔해질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생명표'를 보면 평균 수명이 꽤 늘어나 장수를 복으로 치던 시절은 갔지 싶다. 이제는 시간에 따른 나이보다는 '생물학적 나이'가 더 중요해졌다. 얼마나 오래 살려져 있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하고 즐겁게 만족하며 사느냐가 사람들 관심사가 됐다.

우리보다 노인 문제를 앞서 겪은 서구에서는'적극적 노화'라는 새 단어를 만들었다. 늙어가는 과정을 단순히 죽음을 늦추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정력적인 헌신과 성장의 기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일컫는 말이다. 일흔 된 할머니가 '사별한 자유발랄한 몸, 생물학적 나이 40세'라는 애교 섞인 '애인 구함' 광고를 내는 시대가 올 날도 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장밋빛 전망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수명은 늘었지만 정년은 안 늘어나는 괴리 때문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아무리 좋다 해도 빌어먹을 지경이 되는 장기 휴가는 오히려 고통이 될 수 있다. 방치된 노인이 공원이나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그들을'과잉 생존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엊그제 땅으로 돌아간 전우익(1925~2004) 선생은 장년이 넘어서는 경북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낡은 옛 집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혼자 살았다. 그는 "가을의 낙엽에서는 버림, 청산을 결행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극한의 역경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배웠다"고 썼다. 단풍과 지는 해가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저렇게 멋지게 마치진 못할망정 추접하게 마치지는 말아야 하는데"라고도 적었다. 그가 쓴 편지모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는 이렇듯 홀로 익힌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이야기들이 그득 담겨 있다.

그는 삶을 제대로 이루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과제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건데, 세상의 흐름은 자연과 멀어지고 역사보다는 순간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라며 요즘 세상살이를 안타까워했다. 자신을 전우익이란 이름보다 무명씨를 뜻하는 '언눔'이라 불러달라던 그의 한마디가 겨울 바람처럼 서늘하게 우리 가슴을 베고 지나간다. '언눔네들, 오래만 살믄 무슨 재민겨'.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