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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과 지용의 10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빅토르 위고 탄생 2백주년을 맞은 프랑스는 요즘 온통 위고의 물결로 뒤덮여 있다. 읍·면 단위의 소규모 지자체들까지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한창이다."

위고 200주기 프랑스가 들썩

지난 3월 초 파리 특파원으로부터 이렇게 시작되는 '빅토르 위고 추모 열기'의 기사를 받는 동안 나는 흥분되면서도 조금 부끄러웠다. 올 한 해 이미 열렸거나 예정돼 있는 위고 관련 행사들이 2백건이 넘는다. 어느 하루도 위고 추모행사가 열리지 않는 날이 없고 매스컴들도 그를 재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문화부와 교육부 또한 청소년들에게 위고의 작품과 활동을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원고를 보면서 프랑스가 세계 일류의 문화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도 올해 탄생 1백주년을 맞는 문인이 많다. 민족시인 혹은 국민시인으로 대접받으며 우리 국민의 마음에 각인된 김소월과 정지용 시인을 비롯해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 시인, 그리고 소설가 나도향·주요섭·채만식 등 6인이 올해 탄생 1백주년을 맞았다.

해서 이들에 대한 재조명과 추모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은 오는 9월 26~27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6인의 탄생 1백주년 기념 종합문학제를 연다. 한국소설가협회는 나도향·채만식 등의 기념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해당문인들이 태어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열기로 보면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지난 6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문화사랑방에서는 지용회 등의 주최로 '서울지용제'가 열렸다. 시인 등 3백여명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 김지하 시인이 제14회 정지용 문학상을 받았다.

김시인은 "이제 와 가만히 짚어보니 지난 60여년 내 인생은 한마디로 떠돌이였고, 상금이 없는 이 문학상에도 돈 좀 줬으면 좋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도리어 술에 취하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먼 항구를 떠도는 구름'일 뿐이었으니 메마른 입술이 쓰디 쓸 따름이다"라고 정지용 시구를 따 시인으로서의 소회를 피력했다. 김시인의 이런 소회가 청중의 심금을 울렸을 뿐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했다고 한다.

이런 자리에 왔으면 좋았을 많은 시인이 불참했고, 예술의 핵이랄 수 있는 시인제가 예술의전당 꼭대기 2백석 남짓한 방에서 열린 데 대해 쓰디쓴 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지용 추모행사는 그래도 김소월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지용은 고향인 옥천에서 떠들썩하게 추모행사를 벌여주지만 이북이 고향인 김소월은 그런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또 어느 단체도 별도로 소월의 추모행사를 한다는 소식은 없다.

문예분야도 당당히 대접을

'초혼' '진달래꽃' 등 소월의 시에 가슴 저려보지 않은 국민이 없을 정도로 소월은 우리에게 국민시인이고 민족시인이다. 그런데도 어느 단체·어느 시인 하나 그에 대한 추모를 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비문화적이다. 입만 열면 문화입국을 외치는 정부, 그리고 총예산 중 문화예산이 1%를 넘었다고 내세우는 나라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고는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이 묻히는 팡테옹에 당당히 안장됐다. 그만큼 프랑스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을 대접한다. 우리는 아직도 정지용이 어떻게 북으로 가 언제 죽었는지에 대한 정설도 못내놓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의 '위대한' 시인들은 '먼 항구를 떠도는 구름'이고 그런 꼴을 바라보는 마음은 쓰디써야만 할 것인가. 그래 언제까지 우리는 문화후진국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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