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붕괴? 3년 내엔 일어나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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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28면

“유럽 각국의 재정긴축이 더블딥(double-dip)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듯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의 브라이언 콜튼(사진) 전무는 세계경제분석 책임자다. 유럽의 국채 평가를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지난 22일 한국을 찾았다. 세계금융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중앙SUNDAY는 따로 그를 만나 유럽 사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신용평가사 피치의 브라이언 콜튼 전무

-유럽 국가들이 재정긴축 방안을 내놓았다. 긴축으로 침체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국가 채무를 줄이기 위해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런 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상당한 위험 요인이다.”

-헤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긴축이 결국 더블딥(이중침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피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독일 등이 내놓은 긴축안을 보면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 전체 긴축 규모가 크지 않다.”

-유럽 여러 나라가 긴축안을 대대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는가.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잇따라 긴축 계획을 내놓은 건 재정적자에 대한 각국 입장을 밝히라는 시장요구에 따른 것이다. 정작 유로존 전체의 빚 규모는 올해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내년에 많이 줄어들 전망인데, 유럽 각국이 점진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각국의 긴축정책 때문에 더블딥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치도 유로존의 대표적인 시중은행인 BNP파리바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그리스 등의 국가채무가 부실화되는 바람에 유럽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유럽연합(EU)이 은행들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위기 대응 능력 평가)를 벌였다. 7월 중순쯤에 발표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도 비슷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리스가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도 유럽 은행들 대부분이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왜 BNP파리바의 신용등급을 낮췄는가.
“그 은행 건은 내 일이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경제 규모가 큰 나라로 재정위기가 전염되면 유럽 은행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형 위기 뒤에는 극단적인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일부 전문가들이 유로존 붕괴를 전망했다.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은 영국 전문가들이 주로 그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영국 출신인 콜튼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실제로 유로존이 무너질 수 있을까.
“우리도 그 가능성을 살펴봤다. 3년 이내에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먼저 독일이나 프랑스가 그리스·포르투갈 등을 밀어낼 수 없다. 그런 권한이나 능력이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유로존을 탈퇴하지도 않을 것이다. 두 나라는 경제 체급보다 저평가된 유로화 가치 때문에 이익을 보고 있다.”

-그리스나 포르투갈이 유로화를 포기하지 않을까.
“그들이 유로화를 포기하고 자국 돈을 만들어 유통시키면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출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짊어지고 있는 유로화 표시 채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자국 통화로 환산한 빚 부담이 더욱 커진다. 또 유로화를 포기하면 곧바로 금융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런 일을 감수하고 유로화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스가 채무조정을 받거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수 있지 않을까.
“채권 금융회사 등 시장이 먼저 나서 그리스의 채무조정(만기연장 등)을 벌일 가능성은 있다. 그리스나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 나라 빚 규모가 크지 않아 시장이 받을 충격은 크지 않을 듯하다.”

콜튼 전무는 한국 신용평가를 담당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세계경제분석을 책임지고 있어 한국 신용등급에 대한 피치의 내부 분위기를 엿들을 수 있을 듯했다. 피치는 지난해 9월 신용전망을 ‘A+ 부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바꿨다.

-피치가 한국 신용등급을 높일 가능성은 없는가.
“29일쯤에 우리 팀이 한국 정부를 방문해 경제 상황 등을 조사하고 평가할 계획이다.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말할 처지가 아니다. 다만 한국의 거시경제 상황을 보면 아주 양호하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경기부양 효과가 아주 좋았다. 한국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말하겠다.”

-그리스 사태와 관련해 신용평가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유럽 정치 리더들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신용평가회사들이 뒤늦게 등급을 내려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 신용등급을 뒤늦게 내린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우리는 지난해 5월에 그리스 신용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꿨다. 그리스 사태가 표면화한 때는 지난해 10~11월이었다. 5개월 전에 전망을 낮췄다. 이 정도면 충분한 조기경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이후 잇따라 등급을 낮춘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스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었다. 그리스 정부가 ‘분식회계로 재정적자 규모를 줄였다’는 사실을 고백한 이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맞춰 신속하게 대응했을 뿐이다. 충분히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다. 화들짝 놀라 몰아치듯 등급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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