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무거운 당신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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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35면

봄바람 소리는 봄 처녀의 치맛자락 소리입니다. 살랑살랑 소리 없이 다가와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물들입니다. 여름바람 소리는 록 밴드의 성량 약한 리더보컬의 소리입니다. 천둥소리, 소나기소리, 그리고 개울물소리에 묻혀 듣기가 힘듭니다. 가을바람 소리는 세월을 갉아먹는 세월벌레의 소리입니다. 바스락 바스락, 사각사각. 그 소리 따라 삶의 시간은 짧아지고 삶의 무게는 늘어납니다. 겨울바람 소리는 1년 동안 힘겹게 지구를 돌려온 신(神)의 휘파람소리입니다. 힘겨워서 숨을 몰아 쉴 때 내는 소리입니다. 31년 전, 저는 그 휘파람소리를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시골동네 역사상 서울에 있는 대학에 두 번째로 합격한 아들의 합격증 앞에서 휘파람소리를 섞어서 하신 아버지의 말씀, “막내야. 아비가 늙었다. 너까지 대학 보내기가 쉽지 않구나”에 저는 저 앞에 놓인 팍팍한 현실을 눈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최근 들어 40, 50대 중에 자신의 삶이 무겁다고 말하는 분이 많습니다. 1남1녀를 둔 가장인 경우 자신의 삶의 무게를 덩치가 커진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의 총무게인 300㎏으로 계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조원 매출의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이사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1조원으로 계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만 명의 영업조직을 이끄는 영업본부장은 자신의 삶의 무게를 1만×60kg =60만kg, 즉 600t으로 계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0만t 무게의 회사 건물의 1t짜리 대문을 여는 것은 불과 1g짜리 열쇠입니다. 37만t의 세계 최대 화물선에 시동을 거는 것도 1g짜리 열쇠입니다. 리더는 자기의 몸이 열쇠가 되어 회사를 움직이고, 배에 시동을 걸고 키를 잡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리더의 삶의 무게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조직을 움직이는 열쇠의 무게, 즉 자신의 신체적 몸무게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동양고전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몸을 수련하고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그 다음에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조직을 책임지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몸을 책임지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아파트 놀이터나 가까이에 있는 학교운동장에 가시면 철봉이 있습니다. 그 철봉에 한번 매달려 보십시오. 대부분 다음 두 가지를 느끼실 것입니다. 그 하나는 “아, 나는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구나”, 다른 하나는 “아, 나는 나의 삶의 무게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았구나”입니다. 턱걸이 해보기. 어떻게 보면 수신(修身)의 시작입니다.

골프클럽 광고 중에 ‘너의 아이언을 믿어라’는 광고 카피가 있습니다. 아이언은 정직합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은 흔들리는 자신입니다. 자신의 몸무게를 책임질 수 있게 된 리더들은 다음 두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조직원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몸무게를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아들이나 딸이 성장하면 아이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을 만해야 믿겠다고요? 그러시다면 믿으면서 키웠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믿으면서 키운 아이는 믿어도 됩니다. 믿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가게 할 아이들을 부모가 업고 있으니 삶의 무게가 무거운 것입니다. 회사의 아랫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감각을 믿어야 합니다. 맬컴 글래드웰이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통과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은 분이라면 누구에게나 소크라테스가 말한 다이모니온(daimonion)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자기 내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될 것을 팔랑 귀가 되어 외부의 소리를 쫓아다니니 마음은 어지러워지고 삶은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조직원을 믿고 자신의 감각을 믿는 것. 어떻게 보면 제가치국평천하(薺家治國平天下)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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