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축구 선배 옆에만 있어도 든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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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5월의 첫날, 한강변의 아침 공기는 상큼했다. 삼삼오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나란히 어깨를 맞춰 달리는 낯익은 얼굴 둘. 차범근(48)-차두리(22) 부자(父子)다.

대를 이은 월드컵 출전. 세상에 이토록 영광스런 축구 가족이 있을까. 부자의 월드컵 출전은 세계적으로도 이탈리아의 세사르 말디니(파라과이 감독)와 아들 파올로(AC밀란) 정도뿐이다.

차범근씨의 부인 오은미(47)씨도 "아빠가 분데스리가에서 첫골을 터뜨린 날보다 두리가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지난 30일이 더 기쁜 날이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속도로 30분 정도 뛰었을까. 땀이 부자의 유니폼을 흠뻑 적셨다. 50세가 내일모레인 차범근씨의 체력은 스물을 갓 넘은 아들 못지 않았다.

"애비 욕심으론 그저 부족한 것 투성이죠. 좋게 봐주셔서 월드컵에까지 나가게 됐으니 이제부턴 두리도 책임감을 크게 느낄 겁니다."

차씨가 독일 분데스리가로 건너간 건 1979년. 이듬해에 두리가 태어났다. 두리는 네살 때 바이엘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 들어가면서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다.

두리는 열살 때까지 독일에서 축구를 했다. 90년 귀국한 후 울산 현대중-배재고를 거쳐 고려대에 진학하면서 두리의 축구 실력도 쑥쑥 늘었다. 작은 눈, 어눌한 말투, 내성적인 성격도 그렇지만 1백m를 11초대로 주파하는 빠른 발, 강인한 근성과 뛰어난 체력은 그야말로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그런데 내색은 안했지만 두리 자신은 많이 힘들어하곤 했다. 오른쪽 발가락을 다쳤던 지난해 초엔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 아버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한국 축구 풍토에 적응을 못한 탓이죠. 독일에선 '놀이'로 축구를 하며 흠뻑 빠져들었지만 막상 한국에선 죽기살기의 '승부'로 해야 하니까…. 아버지의 존재도 본인에겐 부담이었을테고…."

그랬다. 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후광이라기보다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제가 어렸던 탓도 있겠지만 독일에서는 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한국에 와보니 모두들 '차범근 아들'이라고 특별하게 봐요. 어쩌다 헛발질이라도 하면 즉각 '차범근 아들이 형편없네'라는 말이 나오고…. 숨이 꽉 막혔어요."

얽힌 실타래를 푸는 건 아버지 몫이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뛰었다. 같이 땀을 흘리고 축구 얘기를 했다. 그땐 부자가 아니었다. 축구 선후배이자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지였다.

"이젠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오히려 곁에 있다는 게 든든해요."

달리기 이후 팔굽혀펴기·다리올리기 등 몸푸는 데도 20분 정도가 소요됐다.

두리에게 '아버지도 넣지 못한 월드컵 골에 대해 욕심이 있겠다'고 슬쩍 던져봤다.

"어휴, 경기에 출전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죠." 손을 내젓는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이런 얘기를 한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하기도 해요. 내가 한국이 첫승을 올릴 수 있는 월드컵 골을 터뜨리면 그때부턴 아버지가 '차두리의 아버지'로 불리지 않을까 하는 거죠."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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