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된 남편 소식 끝내 못 묻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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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 동생들은 날 알아보는데 난 동생들을 몰라." "틀림없는 동생들이에요."

백발의 할머니 김애란(金愛蘭·79)씨는 50여년 만에 여동생 순실(67)· 덕실(58·아명 뽀또)씨를 제대로 못 알아봤다는 것이 미안한지 눈물을 흘렸다.

시댁과 친정이 겨우 15리라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6·25 전쟁이 터지자 한밤중 몰래 이남으로 내려오면서 연락 한번 못해보고 반세기 동안 헤어져야 했다.

"너희들 아버지가 누구야." "김백련이에요." "허허 맞기는 맞는구나. 너희들이 내 동생이구나"라고 말문을 튼 金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릴 때 산딸기 가시에 눈을 찔려 실명한 둘째 동생 덕실씨는 "이 기쁜 날 울기는 왜 울어"라며 옷고름으로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같이 울었다.

"언니, 꼭 어머니 같애. 우리 오래 오래 같이 살아요." 순실씨의 이 한마디에 金할머니는 "나는 동생들 생각 안했어. 만나 보리라고는 한번도 생각 안했어"라며 두 동생의 손을 어루만졌다.

허리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金할머니는 1967년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남편 최원모씨 소식은 전혀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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