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언론규제 법안'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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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 언론계가 '언론규제 3개 법안'으로 시끌시끌하다.

3개 법안은 국회에서 심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인권옹호법과 자민당이 최종검토 중인 청소년유해 사회환경대책기본법이다.

일본신문협회는 24일 "개인정보보호법·인권옹호법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므로 절대 반대한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신문협회는 1백12개 신문사·4개 통신사·38개 방송사가 가입한 일본언론의 대표기관이다. 협회가 언론자유와 관련해 성명을 낸 것은 1987년 우익단체가 아사히(朝日)신문 한신(阪神)지국을 습격한 사건 이후 처음이다. 지난 13일에는 기자·방송인·작가·만화가·언론학교수 등 4백여명이 도쿄(東京)에서 언론자유·민권신장을 위해 애쓴 정치인·언론인 20여명의 사진 피켓과 깃발 등을 들고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들 법안의 기본 취지는 개인정보 유출·악용의 방지, 성차별과 공권력의 인권침해 예방,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 보호 등 건전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기자의 취재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데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보는 적법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이용목적을 밝혀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치·학술연구·종교·보도 등 네 분야에 대해선 예외로 했지만 보도의 경우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보도기관의 취재에 협력하는 사람에게는 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정부는 취재협력자를 통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게다가 '보도기관'의 범위에 잡지사·출판사·작가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전 외상이 비서의 급여를 일부 유용했다는 의혹과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자민당 간사장의 여성스캔들을 보도했던 주간지 주간문춘(週刊文春)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되면 취재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거부하면 징역 6개월이나 벌금 30만엔의 처벌을 받게 된다"며 반발했다. 이 잡지는 또 "조직비리를 공개·제보하는 사람도 '취득목적 이외로 정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처벌받게 되는 등 사회정의가 무너질 것"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은 '부정부패 보호법'"이라고 비난했다.

인권옹호법은 기자들이 범죄사건 피해자·가해자나 가족에게 자주 전화하거나 쫓아다니는 것도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신문사들은 "공권력이 범죄사건 관련 정보를 은폐하려 할 것"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청소년대책법도 정부가 청소년보호를 구실로 방송내용 등을 조정할 소지가 있다.

언론계는 "자율적으로 규제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자민당이 이같은 법을 만들려는 것은 언론을 잡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 있다. 가쓰라 게이이치(桂敬一) 도쿄정보대 교수(미디어론)는 "이들 법은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자유·인권을 억압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언론의 자율규제에는 한계가 있다. 법과 언론자유는 양립할 수 있다"며 국회 통과를 강행할 태세여서 자칫하면 엄청난 '언론자유 파문'으로 번질 전망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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