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 '설익은' 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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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의 25일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지난 19일의 폭로 이후 처음 모습을 보인 薛의원은 "미래도시환경 최규선(崔圭善)대표가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의원을 통해 같은 당 이회창(會昌)전 총재에게 2억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심증과 확신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직접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있다던 녹취록도 "없다"고 했고, 증인도 밝히지 않았다.

이날 薛의원은 한나라당 尹의원과 崔대표 간의 돈거래 현장을 녹음한 테이프를 소유한 당사자를 못 만났다고 시인했다.

그는 "직접 접촉하지 못했고 누군가 다리를 놔주고 있다"고 했다. 이 '누군가'에 대해 薛의원은 첫 폭로 때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보기관이나 권력기관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건 한나라당 주장일 뿐"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薛의원은 이날도 제보자의 정체에 대해 신변 보호를 이유로 함구했다.

더욱 의아한 것은 薛의원이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직접 들은 사람이 누군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薛의원은 이날 "녹음테이프 내용을 누가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은 들었을 것이고, 그 사람과 접촉하는 사람도 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薛의원은 녹음 테이프 소유자를 만난 적이 없고, 자신이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들어본 적도 없으며,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실제로 들은 사람이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 폭로를 감행했다는 뜻이다.

본인의 정치 생명과 정국의 향배가 걸린 엄청난 사안을 이처럼 허술한 근거만을 토대로 폭로했다는 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薛의원의 행동은 오로지 제보자에 대한 1백%의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대변인은 "그는 공작정치의 하수인일 뿐이며 몸통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薛의원의 폭로는 세 아들 문제로 김대중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나온 공작"이라며 "배후가 청와대인지, 국정원인지, 金대통령 본인인지가 밝혀져야 한다"고 공격했다.

薛의원이 알맹이 없는 기자회견을 25일 감행한 이유도 이해가 잘 안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언론의 비판이 계속되는데 잠적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정치공방을 중단하고 빨리 사건을 검찰로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녹음테이프 공방을 일단락짓기 위한 회견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권력기관 배후설이 확산되는 걸 차단하고 빨리 사건을 검찰로 넘겨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은 '검찰에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정치공방을 중단하자'면서 발을 빼고, 검찰은 '조사가 잘 안된다'면서 시간을 끌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또 구속된 崔씨가 자신의 구명(救命)을 위해 갑자기 薛의원의 발언에 동조하고 나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김종혁·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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