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국민 90% "개혁성과 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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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성역 없는 구조개혁, 파벌정치 탈피,국민과의 적극적인 대화….

오는 26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정권출범 때 다짐했던 과제들이다. 당시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는 대단했다.지지도는 80%를 웃돌았다.고이즈미를 본뜬 캐릭터 상품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취임 1주년을 맞아 일본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어둡기만 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전국 성인남녀 2천12명을 조사한 결과 지지율이 42%에 그쳤다고 22일 보도했다. 특히 무려 90% 이상이 "개혁의 성과가 없다고 본다"고 응답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 조사에서는 35%만이 "앞으로 구조개혁이 실현될 것"이라고 응답했고, 61%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고이즈미의 인기 하락의 신호탄은 그와 함께 '개혁의 쌍두마차'로 불리던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전 외상을 올해 초 전격 경질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회생·구조개혁에 진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잇따라 터진 '돈정치' 스캔들을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도 국민의 실망감을 부추겼다. 다나카 젠이치로(田中善一郞) 도쿄공업대 교수(일본정치)는 "경기불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다 개혁조차 애매모호해졌다는 것을 국민이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요즘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의 입에서 구조개혁이란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자주 꼬집는다. 일각에선 "실천보다 말이 앞서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의 한계"란 이야기도 나온다.

고이즈미는 "정치적 위기가 오면 국회해산도 불사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권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 다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는 "그를 대신할 사람이 아직은 자민당 내에 없다"고 말했다. 자민당 내 반대파도 '고이즈미 붕괴=자민당 몰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의 앞날은 니가타(新潟)현 보궐선거 등 오는 28일 치러지는 3개 지역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 곳 모두 패배할 경우 '고이즈미 효과'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이 경우 자민당도 고이즈미에 대한 기대를 접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 정책 면에서 고이즈미는 '신보수주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이즈미는 다나카와 결별하고 우군이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전 의원마저 몰락해 당내 입지가 약해지자 '우파 개혁저항 세력'과 손을 잡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지난해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을 만들었고, 요즘엔 유사법제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재임 중 역사왜곡 교과서 파문이 두차례나 빚어졌고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두 번이나 전격적으로 참배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장은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 표면상 큰 마찰이 일지는 않겠지만, 이같은 고이즈미의 태도 때문에 월드컵 이후의 한·일관계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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