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꼴찌신화 엑써스가 해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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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남자 실업농구팀 삼성이 현대·기아와 정상을 다투던 아마추어 농구의 황금기에 김현준(작고)·김진(동양 오리온스 감독)이 펄펄 날 때 전창진(39)씨는 비대한 몸을 방한복으로 감싼 채 음료수통을 깔고 앉은 주무였다.

전씨는 '뚱보 주무'로 각인돼 있다. 용산고-고려대 시절 청소년 대표까지 했던 화려한 과거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주무는 감독·코치와 선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자리다. 그렇기에, 최근 그를 사령탑에 올린 프로농구 삼보 엑써스의 결정은 의외였다. 지난 시즌 정규 리그 도중 김동욱 감독이 사임한 후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한시적인 역할일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엑써스는 정식으로 연봉 1억4천만원에 2년 계약을 체결, 최초의 '주무 출신 감독'을 탄생시켰다.

적잖은 선배 농구인들이 "경험이 부족해 감독을 맡기에는 이르다"고 만류했었다. 전감독은 1998년 삼성 썬더스에서 잠시 코치를 맡았지만 역할은 주무나 다름없었다.

전감독의 발탁은 정말 소문대로 용산고 출신이 많은 엑써스에서 받은 특별대우일까. 엑써스의 최형길 부단장은 펄쩍 뛴다. "엑써스가 이기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아는 감독"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이 옳은지는 다음 시즌에 확인된다.

전감독도 부담이 없지는 않다. 우선 선배덕을 봤다는 뒷말이 귀에 거슬린다. 실패하면 선배들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

지도자의 길에 먼저 들어선 동갑내기 추일승(상무)·유재학(SK 빅스)·정덕화(현대 하이페리온)에게 뒤지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전감독은 요즘 농구를 새로 시작하는 듯 긴장감과 함께 승부욕이 밀려드는 것을 느낀다.

전감독은 어떤 농구를 보여줄까. "꼴찌에서 정상으로 치솟은 동양 오리온스의 신화를 엑써스가 재현하기를 원한다"는 전감독의 말에서 큼직한 포부가 느껴진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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