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공개 못한 설훈 외부서 정보 제공 받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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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의 '녹음 테이프'공개가 어려워지면서 薛의원의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가 관심사로 등장했다.

薛의원은 뒤늦게 문제의 녹음 테이프 내용을 들어보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발표를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薛의원이 자신의 주장처럼 제보자를 만나 증거를 수집한 결과를 폭로한 게 아니라 '1백% 믿을 만한 측'에서 정보를 제공받아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薛의원의 행동=薛의원은 지난 19일 오후 3시30분쯤 조간신문 마감시간이 임박한 시간에 사전예고 없이 폭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이 5분 발언으로 김대중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의혹을 맹공하고, 최성규(崔成奎)전 총경의 해외도피와 청와대 비서관의 최규선씨 밀항 권유설이 제기된 날이다.

갑작스런 회견 배경에 대해 당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집중공격을 받고 있지 않으냐"고 '불끄기'의 성격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薛의원은 이날 회견에서 "증인도 복수(複數)로 있고 증거도 있다"면서 "며칠 전 제보를 받았고 서로 다른 제보자가 같은 내용을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薛의원은 이 증인들에 대해서도 처음엔 두명 이상이라고 했다가 23일엔 최소한 한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자신이 직접 만났다면 증인들의 숫자가 다르다는 건 이상하다.

薛의원의 증언도 앞뒤가 맞지 않고 어색한 대목이 꽤 있다. 그는 19일 저녁 기자들에게 "테이프를 들어보면 한나라당 이회창(會昌)전 총재가 돈 받은 걸 알 수 있다"며 직접 테이프를 들은 것처럼 말했다. 20일엔 "내가 듣지는 못했지만 테이프를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갖고 있다"고 했다.

薛의원은 또 '신뢰할 만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파장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23일 "다른 사람이 폭로할 수도 있었는데 薛의원이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薛의원의 폭로내용은 외부에서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 '외부'가 청와대나 국가정보원·검찰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불개입' 약속은 허구가 된다. 엄청난 정치적 파문이 일 수 있는 것이다.

◇'빌라 15억원'발언도 의문=지난 16일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폭로한 '한인옥 여사의 15억원 빌라 구입 의혹'도 내용의 출처가 아리송하다.

법사위에서 발언을 한 함승희(咸承熙)의원은 "내가 제보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결위에서도 이재정(在禎)의원이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야당이 맹공을 퍼붓고 있어 대책이 필요했고, 의원의 경우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총무단에서 자료를 건네받아 폭로했다"고 전했다. 예결위 간사인 강운태(姜雲太)의원도 "총무단이 자료를 내놨다"고 말했다.

그러면 총무단의 자료는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이에 대해 정균환(鄭均桓)총무는 "국회가 열리면 의원들에게 이런저런 자료가 수집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선 "국정원과 검찰의 자료 등이 청와대를 통해 당으로 전달되고, 그것이 여당 의원들의 야당 공격자료로 제공되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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