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번호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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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재 서울의 자동차는 모두 2백55만여대고 이 중 승용차가 1백91만여대다. 이들은 모두 자동차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는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

나라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서울의 경우 자동차들은 구별로 할당된 1개의 고유한 숫자를 앞에 세우고 그 다음에 개별 차량별 고유번호를 부여받는다. 예를 들어 종로구 차량은 종로구의 고유번호인 30번, 중구는 31번, 강남구는 52번, 강동구는 54번 이런 식으로 자기 구의 고유번호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강남구가 새로운 번호를 하나 더 받았다. 강남구 고유번호인 52로 발급할 수 있는 자동차의 일련번호가 모두 소진돼, 새롭게 55번을 부여받은 것이다. 전국에서 부자들이 가장 많은 구(區)이다 보니 강남구에 자동차도 가장 많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내용을 알아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기가 거주하는 구와 상관없이 원하는 구에 자동차를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서울특별시 내의 특별구, 강남 상표를 자기 차에 다는 풍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흥업소나 서비스업체에 가보면 이런 풍조를 그냥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일부 업소에서 손님의 자동차가 얼마나 큰 차냐, 새 차냐, 외제차냐 국산차냐 등의 구분으로 손님을 눈에 보이지 않게 차별했는데 요즘에는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강남차냐 아니냐를 구분해 차별하는 풍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동차 중개업소 등에도 이왕이면 강남구 번호판을 달아달라는 손님들의 요청도 있고 상술 차원에서 손님에게 강남 번호판을 달아주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동차에 번호판을 단 것은 사고를 방지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1893년 파리경찰은 마차 이상의 속도로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각종 사고를 일으키자 시속 30㎞ 이상인 자동차에 대해 차주의 이름과 주소, 등록번호를 기재한 철판을 차앞 왼쪽에 달도록 했으며 1900년께에는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1914년께, 승합차 회사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경찰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번호판은 검은색이었으며 등록한 도시이름과 경찰에서 준 두자리 숫자를 기재했다. 처음에는 앞에만 달았지만 차츰 뒤에도 달게 됐다. 이처럼 관리를 위해 고안된 번호판이 어쩌다 묘한 차별의식을 상징하는 도구가 돼 버렸는지, 한탄이 절로 나온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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