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중산층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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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거철이 다가왔다. 직업적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몇몇 모이기만 하면 선거 이야기로 바쁘다. 주로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선거운동전략, 당선 가능성 등에 대해서까지 모두 그럴듯하게 분석과 판단을 내놓는다.

일반 시민이 선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히려 국민이 선거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진다. 선거는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의 판단을 하나의 결정으로 집합(aggregate)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만일 선거 참여율이 너무 저조하다든가 투표행위가 자유롭지 못하든가 하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뜻에서 우리나라는 참으로 다행한 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짧지만 선거를 하는 조건과 분위기가 매우 자유롭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높기 때문에 선거절차가 잘못될 염려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선거는 잘 되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선거는 사회를 분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정당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는 우리 국민을 동서로 그리고 좌우로 갈라놓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금년 대선은 우리 사회를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진보와 보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로 대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선거제도를 뜯어고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가령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꾼다고 해도 지역주의는 여전할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입법부에서의 지역간 갈등이 더욱 격심해질 수 있다.

그러면 사회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선 사회갈등을 보는 우리들의 시각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 한국사회와 같은 복합적인 사회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사회갈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순수'하고 '완벽'한 것만을 꿈꾸는 사람들은 모든 갈등이 제거된 오로지 절대적인 콘센서스(consensus)와 통합(integration)의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마르크스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세력은 복합사회의 동질화를 위하여 다양한 관점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개인을 제거하려는 충동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낭만적 이상주의가 위험한 까닭이다.

전체주의는 이기적인 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이상주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순수주의자들의 환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 이상주의의 위험을 의식한 나머지 현실주의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현실주의를 절대화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뜻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는 사회 전체의 침체와 타락을 가져오게 되고 결국에는 극단적 좌익에 못잖은 극단적 우익의 이데올로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선거로 인하여 사회갈등이 조성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는 세력들의 기본자세가 극단주의로 흐르는데 있다. 바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구조면에서 보면 극단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수의 중산층이 건재해야 한다. 좌우간의 갈등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대 복합사회에서 불가피하지만 좌건 우건 극단적인 과격주의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은 결국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중산층이 현실성 없는 낭만적 슬로건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린 자세를 지키면서 사회의 변화와 안정, 그리고 통합과 갈등을 조화롭게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금년 대선에서 한국사회의 중산층이 담당하는 역할은 참으로 중차대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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