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CEO ④] 평택서 '경기으뜸미' 생산 원영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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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서 '경기으뜸미'라는 브랜드 쌀을 생산하고 있는 원영수씨가 논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평택에서 쌀농사를 짓는 원영수씨(31)는 '농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농업경영인'이라고 불렀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자 둘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농부는 단순히 농사를 짓고 식량을 생산해 배 곯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농업경영인은 농업을 회사경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는 농토는 '생산공장'이며 쌀을 생산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영효율화와 제품의 품질이다.

그의 제품은 '경기으뜸미'라는 브랜드로 시중에 나와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밥맛이 좋다 보니 가격도 일반미보다 10%이상 비싸지만 없어서 못판다. 그렇다면 8년째 쌀농사를 짓는다는 원씨의 올 경영실적은 어떨까.

"1억4000여만원 매출에 순익은 1억원 정도 입니다. 아직은 얼마 안됩니다."

요즘같은 불황에 어지간한 중소기업 순익 뺨치는데도 얼마안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더 놀라운게 있다. 매년 농사를 지으면서 외부인력은 거의 쓰지 않고 혼자 일한다. 그는 경영의 효율화와 기계화 덕이라고 했다.

그의 경영비결이 궁금해 최근 평택을 찾았을 때 그는 5톤짜리 소형 포크레인으로 지인의 논두렁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쌀농사 끝났으니 아르바이트 하는 겁니다. 겨우내내 일거리가 많아서 봄이 오기까지 수입도 쏠쏠하지요."

요즘 청년답게 그는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는 농업 최고경영자(CEO)였다.

평택 토박이인 원씨는 6남매중 막내다. 위로 누나 넷은 결혼했고 형 역시 결혼해 회사원이다. 때문에 주위에선 응석부리고 가장 철 없어야 할 막내가 웬 농사냐며 적잖이 놀란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되묻는다.

"모두가 농촌으로 돌아오는 판에 왜 도시로 나가요?"

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농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농지래야 연로한 부모님이 가진 3000여평. 농업엔 관심이 없어 고등학교도 평택기계공고를 졸업했다. 기능공 자격증이라도 따 밥벌이 할 심산이었다. 원씨가 생각을 고쳐먹은 건 고교시절 동네 4H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농사짓는 선배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의외로 농업에 기회가 있겠다 싶었어요. 아무 생각없이 일만하니 농업이 힘들고 돈을 못벌지 머리를 쓰면 직장생활보다 훨씬 쉽게 많은 돈을 벌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막상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 부모님이 가진 3000평으론 타산이 맞지 않았다. 농업 효율화를 이루려면 기계화 대형화가 필요한데 농지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졸업후 두해쯤 지나 그는 유휴농지나 위탁경작지를 모으기로 했다.

"평택만 해도 외지인들의 농지소유 비율이 20%나 됩니다. 모두 투기목적 농지일 겁니다.이런 농지는 놀리느니 위탁경작을 하면 소작료(쌀)도 생기니 외지인들이 싫어할 리 만무하죠."이렇게 해서 그는 3만평(10ha)을 모았다.

부모님을 설득해 기계도 구입했다. 경운기,승용이앙기,콤바인,벼 건조기등 4500여만원이 들었다. 농업에 대한 애착을 늘리고 경영효율화를 위해선 어쩔수 없었다.

다음은 품질제고였다. 기존의 품질로는 평생 '농부'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컸다. 그는 먼저 경기도 쌀연구회를 찾았다. 지금도 그는 시간이 날때마다 쌀 연구회를 찾아 좋은 쌀품질을 만들기 위한 자문을 얻는다. 평택 농업기술센터도 찾아 환경농업기법도 배웠다. 그리고 그는 외국의 어떤 쌀이 들어와도 자신의 쌀은 없어서 못팔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소개하는 경기으뜸미의 생산비결은 이렇다.

"우선 질소질 비료를 적게 씁니다. 보통 농민들은 200평당 20~25kg정도를 뿌립니다. 그러나 전 15kg정도로 줄입니다. 질소질비료는 너무 적으면 쌀이 밥맛이 떨어지고 벼의 무게를 늘려 바람에 쓰러지기 쉽상이죠. 이 때문에 일반 농민들이 질소질비료로 쌀 품질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쓰면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화학 조미료로 밥맛을 낸 것과 같아집니다. 인체에 무해하고 밥맛을 유지하는 적정량을 전 경험으로 15kg이라고 봅니다."

"수확직전까지 논에 물을 빼지 않는 것도 밥맛을 높이는 저만의 생산방식 입니다. 벼에 물기가 오래도록 지속되면 쌀의 찰기가 더 생기지요. 또 쌀 도정시 쌀이 갈라지지 않아요.일반인들도 이같은 사실은 알지만 수확시 논이 말라있지 않으면 콤바인 소유주들이 작업을 꺼리기 때문에 수확 10여일전에 물을 빼버리지요. 벼에 수분을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 일반 농가보다 수확을 1주일정도 늦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작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제조업공장에서 제품하자가 생기면 품질관리팀에 비상이 걸리듯 그도 쌀에 문제가 생기면 경작과정의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위해 경작과정에서 문제점은 반드시 기록하고 해결한다.

내년에 예상되는 쌀개방 확대에 대해 그는 농작물 품질향상 외에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품질향상은 선진적인 경영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농촌은 농작물재배의 선진화는 차치하고 농기계 관리조차 원시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심지어는 농기계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10년쓸 기계를 3년만에 폐품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쌀개방이 아니더라도 농업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정부가 걱정하는 농가부채란 대부분 비효율적인 경영이나 관리에서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그의 꿈은 분명했다.

"전 개인적으로 외국산 농산물 개방은 겁나지 않습니다. 제가 생산한 쌀이 어느 제품보다 맛이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죠. 대한민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 맛을 내는 쌀을 생산하는 게 저의 꿈입니다."

평택=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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