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무서운 여성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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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올해 초 부산백병원을 찾은 50대 초반 여성은 "이혼 후 새로운 남성을 만났지만 성적으로 흥분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진단결과 그녀의 남성 및 여성호르몬이 정상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주치의는 호르몬 투여 처방을 내렸고 3개월 후 성적 욕구는 거의 정상수준으로 회복됐다.

또 결혼 5년차인 30대 초반 직장여성은 "통증으로 1년 가량 성관계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의사에게 털어놨다. 검사결과 생식기 주변에서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궤양이 발견돼 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난 1월 이화여대 서울목동병원을 방문한 51세 여성은 "폐경 후 성욕이 지속적으로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의사는 "진단결과 요실금·질(膣)염이 확인됐고 방광이 처져 있어 질염을 치료하고 6주간 전기자극 치료를 해줬더니 만족감이 커지고 통증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정신적인 문제로만 치부됐던 여성의 성기능장애가 남성들처럼 신체 이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1천7백여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해 1999년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43%가 성기능장애를 보여 남성(35%)보다 오히려 많았다.

중앙대 서울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는 "정신적 문제 외에 성호르몬이 부족하거나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동맥경화 등으로 인해 성기로 가는 혈관이 막혔거나, 감각신경·자율신경이 무뎌지거나 손상됐을 때도 여성의 성적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심리적 문제로 성기능 장애를 경험하는 여성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흥미가 없어서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다"며 중앙대 용산병원을 찾은 30대 후반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에게 비아그라를 처방하고 포르노영화를 보게 한 후 음핵의 반응을 검사한 결과 혈류가 증가했다. 성적 흥분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 담당 의사는 '심리적인 문제 탓'으로 진단했다.

최근 이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정우식 교수가 25~59세 여성 3백50명을 조사한 결과 47%가 성행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저 그렇다' 38%, '약간 불만족' 5%, '매우 불만족'4%). 성관계를 한달에 한두번 하는 사람이 35%였다.

과거에는 여성의 성기능장애를 '불감증'으로 뭉뚱그려 표현했으나 최근에는 성 욕구장애·성 각성(覺醒)장애·극치감 장애·성 동통(疼痛)장애로 분류한다.

이중 성 욕구장애는 성혐오증·성욕저하증 등에 기인한다. 폐경 후 남성호르몬의 분비량이 떨어졌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여성에게도 올 수 있다.

부산백병원 비뇨기과 민권식 교수는 "남성호르몬은 성욕에 관계하는 호르몬으로 여성에게도 소량(남성의 20분의 1) 있는데 이 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낮은 여성에게 투여하면 성적 욕구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성적 흥분이 안되는 성 각성장애는 질 윤활액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이 특징. 다발성 경화증이나 당뇨병환자에게 올 수 있다.

성 동통장애는 성기 부위의 염증·골반근육의 긴장·갑작스런 충격 등으로 성행위시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

성 각성장애 여성은 프로스타글란딘 연고를 성기에 바르거나 아르기닌과 요힘빈을 섞어 복용하거나 성행위 직전에 물리기구(음압을 이용해 음핵을 흡입·팽창시키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통증이 심할 때는 전기자극 치료를 하거나 수술을 한다. 이대 목동병원 정우식 교수는 "성기능장애를 예방하려면 골반근육운동(케겔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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