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아버지와 딸 "피는 못속이나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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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아빠, 어제 아빠가 가르쳐준 조리법(레서피)대로 생태매운탕을 끓였는데 왜 제 맛이 안나지요?"

"글쎄…, 똑같은 레서피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도 요리사마다 제각각 다른 맛이 난다. 재료의 크기나 끓이는 그릇에 따라서도 음식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지. 정확한 수치도 중요하지만 몸이 느끼는 감(感)을 잡아야 한단다."

지난 일요일(7일) 모처럼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서울 삼성동에 사는 장재일(54·(右))·장소영(28)부녀간의 대화내용이다. 다른 집 부녀(父女)처럼 주변의 신변잡담이나 잔소리가 아니라 사제(師弟)간에 묻고 가르쳐주는 학습대화다.

이들은 집안에선 부녀 사이지만 집밖을 나서면 둘다 요리사인 직업인이다. 아빠 장씨는 서울 역삼동 아미가호텔 일식당 '나라'의 수석주방장, 딸 소영씨는 인근 일식당 '모모'의 요리사다.

아빠의 대를 이어 아들도 아닌 딸이 요리 중에서도 힘들고 어렵다는 일식 요리사의 길로 나선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아빠가 참가한 요리 경연대회에 구경갔다가 아빠같은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어요. 보잘 것 없던 식재료가 아빠 손을 거치면서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변한 것에 매력을 느낀거죠."

이후 소영씨는 그동안 전공하던 도예공부를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2년 만에 한식·양식·일식·중식·복어 조리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한번도 낙방하지 않았다.

그 뒤 요리학원 강사생활을 4년간 한 뒤 지난해 말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현업에 뛰어든 것.

소영씨가 현재 모모에서 맡고 있는 일은 덴뿌라(튀김)다. 사시미(회)·스시(초밥) 등 여러 분야 중 튀김을 맡은 이유는 그녀의 튀김 솜씨가 남다르기 때문.

아빠 장씨도 "소영이가 만든 튀김요리는 적당한 농도의 튀김옷을 입혀 적확한 온도에서 튀겨져 바삭거림이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이어 "자기 새끼만 챙기는 고슴도치 아빠의 말이 아니다"라며 "객관적으로 봐도 끼까지 갖춘 노력하는 후배 요리사"라고 덧붙였다.

장씨는 "맛있는 요리는 손재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에서 비롯된다"며 이 말을 요리사를 택한 모든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1971년부터 힐튼호텔·하얏트호텔 등지에서 30년 넘게 요리사의 외길만 걸어왔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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